청와대 인사추천회의는 정부 인사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노무현 정부 들어 만들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재하고 민정, 인사, 시민사회, 홍보 등 주요 수석비서관이 참여한다. 현 정부가 ‘시스템 인사’를 한다고 자랑하는 근거의 하나가 이 회의다.
그러나 신임 국가정보원장 내정은 제도의 취지가 무색하게 ‘밀실에서 정실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졌다. 인사추천회의는 처음에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을 단수로 추천했다. 연초 교육부총리 인선파문을 겪은 뒤 ‘주요 공직후보를 복수로 선정해 여론검증을 받겠다’고 했던 원칙이 애당초 빗나간 셈이다. 그러다가 며칠 뒤 복수의 후보를 거명했지만 또 며칠이 지나자 청와대는 후보군에 들어있지 않던 김승규 법무장관을 전격 내정했다.
김 장관은 건강을 이유로 세 번이나 고사했지만 청와대는 강권(强勸)하다시피 그를 내정했다. 그 과정에서 ‘허수아비 후보’ 한 명 끼워 넣어 복수 추천이라는 겉모양을 만들었다고 한다. 투명성도, 객관성도 없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무원칙한 인선이었다.
김 장관을 새 국정원장에 기용하려는 배경도 석연찮다. 청와대 측은 ‘호남민심 추스르기’의 일환으로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국정원장의 ‘빅 3’ 가운데 한 자리를 호남 몫으로 안배해야 한다고 판단해 김 장관 카드에 집착했다는 후문이다. 국가정보업무 총괄책임자를 ‘일을 위한 적임(適任)’이라기보다 ‘정치적 고려상의 적임’으로 고른 셈이다.
현 정부 인재풀의 한계도 여실히 드러났다. 청와대는 그동안 장관급 후보만 600여 명을 확보해 데이터베이스(DB)에 넣어놓았다고 강조해왔다. 그런데도 법무장관을 국정원장으로 옮겨 앉히는 ‘벽돌 바꿔 끼우기’ 식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전히 ‘코드’에 집착해 인재풀을 스스로 좁힌 탓이 아닌가.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정부 인사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국정이 순항하기 어렵다. 코드와 정실과 연줄을 버리고 경험과 역량 있는 인재들을 제대로 기용할 때 국정쇄신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