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유주의를 따랐다는 데 있다. 경쟁과 엘리트의식만 강조하고 사회적 연대는 외면했다. 이제 참여민주주의 정부는 평등원칙에 입각한 교육개혁에 들어간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은가. 베네수엘라의 교육체육부 장관이 두 달 전 ‘베네수엘라 분석’이라는 영문 인터넷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교육철학이다.
당연히 반대파에선 위헌이다, 교사로 가장한 정치세력이 아이들을 세뇌시킨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요즘 우고 차베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70%다. 그 나라 국민이 좋다는 데야 그 교육혁명이 쿠바를 빼닮았든 말든 내겐 상관없다. 세계 5위 산유국이니만치 석유 값이 폭락하지 않는 한 그들끼리 잘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른 나라의 교육개혁은 좌파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와 정반대다. 이스라엘에선 16일 교사 2500명이 해고됐다. 정부의 의뢰를 받아 학계와 기업계, 사회인사 18명이 연구 발표한 교육개혁안에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실력을 높이려면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학교 교사에 대한 평가, 학교장의 예산 정책결정권이 필요하다는 것이 개혁안의 핵심이다.
이 보고서에 언급됐듯이 최근 세계의 교육개혁은 교육의 질과 성취도를 높이는 데 집중되고 있다. 지난달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학부모의 교육권을 강조하며 “실패한 학교는 문 닫아야 한다”고 연설했다. 중동의 부국 바레인도 ‘시장의 요구’에 보다 잘 맞출 수 있는 경쟁력 위주의 교육개혁을 시작했다.
베네수엘라식 해석대로라면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으로 세계가 달려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지 않고는 아이들이 커서 먹고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혁명과 함께 온 세계화라는 흐름은 누가 막는다고 해서 막아지지 않는다. 이제 기업과 공장은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지닌 인재가 있거나, 최저가 노동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땀 흘려’ 일하고 싶어도 13억 중국 인구와는 경쟁이 안 된다.
그렇다면 휴먼캐피털의 질을 높이는 것 외엔 대책이 없다. 유럽연합(EU)의 통상위원 피터 맨덜슨 씨가 “부(富) 없이 기회 없고, 기회 없으면 진보도 없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개인의 잠재력을 키우려면 학교교육의 수준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교교육의 성패는 교사의 능력과 태도에 달렸다. 핀란드의 아라비아 종합학교 교장이 일등교육 비결 세 가지로 교사, 교사, 교사를 꼽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사조직에선 현재의 교육정책이 신자유주의적이라며 공동체중심, 평등교육, 대학평준화 등을 주장한다. 교과서는 세계화 속에서 살아갈 방법보다 세계화의 부작용을 강조한다. ‘많이 배우신 분’에 대한 집권층의 적개심은 세상이 다 알고 있다.
지금은 교사평가제나 3불 정책(고교등급화, 본고사, 기여입학제 금지), 사학법개정을 놓고 입씨름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좋건 싫건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세계화 시대에서 ‘반(反)세계화 세력’이 우리 교육을 좌지우지하며 우리 아이들을 세계와 거꾸로 가도록 만들고 있는 게 문제의 핵심임을 주시해야 한다.
아마추어 경제실험으로 살기가 어려워지는 건 차라리 괜찮다. 강남 아파트 값이 치솟는 것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교육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실력 못 기르고, 인재 못되고, 커서는 일자리도 없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건 견딜 수 없다. 그때는 우리 아이들이 누구의 무덤에 침을 뱉을지 똑똑히 봐둘 일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