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장관 입에 쏠린 눈… 눈… 눈…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귀환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17일 저녁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4시간 50분에 걸쳐 면담한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정 장관이 먼저 남북관계 발전과 핵문제 해결에 관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한 데 대해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께 안부 인사를 전해 달라. 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정 장관은 전했다.
다음은 정 장관이 전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대화 내용.
○ 북핵 문제와 6자회담
▽김 위원장=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유훈이며,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핵무기를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 6자회담을 포기한 적도 거부한 적도 없다. 다만 미국이 업수이(업신)여겨 자위적 차원에서 맞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7월에라도 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 미국과 좀 더 협의해 봐야 한다. 6월 10일 한미정상회담 결과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미국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것이다. 동시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적 사찰을 모두 수용해 철저한 검증을 받을 용의가 있다. 와서 봐라. 하나도 남길 이유 없다. 모든 것을 공개해도 좋다.
▽정 장관=북한이 원하고 있는 체제 안전보장은 북-미 양자 간 안전보장보다는 다자틀 안전보장이 더 굳고 실효성이 있다.
▽김 위원장=일리 있다. 신중히 검토하겠다.
▽정 장관=6자회담이 재개되면 우리 정부는 실질적인 핵문제 타결을 위한 ‘중대 제안’을 구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신중히 연구해서 답을 주겠다.
○ 북-미 관계 및 부시 대통령 평가
▽정 장관=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 대한 호칭을 경칭으로 ‘미스터’라고 함으로써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했다.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또 경칭을 사용했다. 최고지도자 간 상호 인정과 존경이 협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해 달라.
▽김 위원장=(웃으며) 부시 각하라고 할까요? 내가 부시 대통령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을 때 “부시 대통령은 대화하기 좋은 남자다. 대화하면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여기(북한) 와서 같은 취지로 얘기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때부터 미국을 좋게 생각하고 있고 우호적으로 대하려고 해 왔다. 협상 상대에 대한 존중이 중요하다. 나의 이런 생각을 공개해도 좋다.
○ 남북관계
▽김 위원장=6·15 5주년 행사를 민간과 정부 대표단이 참여해 성대하게 치른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 서울에서 준비 중인 8·15 행사에 북한이 비중 있는 정부 대표단을 꾸려 보내겠다. 8·15 행사가 6·15 행사에 이어 남북관계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정 장관=올해 8·15는 분단 60년이자 광복 60년의 뜻 깊은 해이다. 지난 1년간 중단된 이산가족 상봉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김 위원장=(임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에게) 8·15를 계기로 이산상봉을 금강산에서 하도록 해 보시오.
▽정 장관=남측 적십자사에 등록한 대기자만 12만 명이다. 이분들이 연세가 들어 해마다 5000여 명이 세상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금강산 상봉으로는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른다. 정보화 시대인데 화상 상봉을 통해 안부를 주고받고 하면 한을 풀 수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매우 흥미있고 흥분되는 제안이다. (남북이) 함께 준비해 이번 8·15 때 첫 화상 상봉을 추진해 보자. 남북이 경쟁적으로 준비해서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정 장관=남북 정상회담도 열려야 하지 않겠나.
▽김 위원장=적절한 때가 되면 이뤄질 것이다.
▽정 장관=다음 주에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린다. 그동안의 장관급회담 문화를 한번 바꿔 보자.
▽김 위원장=적극 공감한다. 이제까지는 회담이 열리면 5분 정도 덕담과 날씨 얘기, 모내기 끝났느냐는 얘기를 해놓고는 주먹질하고 말씨름하고 소모적이었다. 적극 개선해서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논의하자.
▽정 장관=작년에 열린 남북 장성급회담에 대해 남측에서는 남북 화해협력의 실질적인 성과를 느끼고 있다. 정치 군사 분야에서도 회담을 만들어 낸 데 대해 국민이 좋아하고 있다. 재개하자.
▽김 위원장=장관급회담에서 이 문제를 합의하자. 회담을 통해 서해에서의 평화정책 의지를 밝히자. 경계선도 분명치 않은 바다에서 총질할 이유가 없다.
▽정 장관=장성급회담과 동시에 수산회담을 열어 바다에서 공동어로를 통해 긴장이 아닌 공동 이익을 낚아 올리자.
▽김 위원장=동의한다.
▽정 장관=남북이 비행기로 오갈 때 서해상으로 가서 ‘ㄷ’자로 오기 때문에 50분 정도 걸린다.
▽김 위원장=서울에서 평양까지 육로 상공으로 오는 방안을 협의해 실천하자.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