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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노블리안스]박중현/김우중 前회장과 설렁탕 한그릇

입력 | 2005-06-20 02:48:00


최근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 귀국을 취재하기 위해 베트남 하노이에 다녀왔습니다. 그가 탄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발 아시아나항공(OZ) 734편에 동승해 취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엉뚱하게도 김 전 회장의 ‘설렁탕 발언’이었습니다.

14일 오전 2시반 경(한국시간) 김 전 회장은 스튜어디스가 권하는 기내식을 거절하면서 “서울에 가서 설렁탕이나 한 그릇 먹으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회장은 과거 대우그룹 최고경영자(CEO) 시절 식사를 ‘일하기 위한 연료(燃料)’정도로 생각했던 기업인으로 유명합니다. 회의 중 식사시간이 되면 임원들과 함께 제일 가까운 중국음식점을 찾아 빨리 나오는 자장면이나 짬뽕을 주로 주문했다고 합니다.

다른 임원들도 ‘알아서’ 김 전 회장과 같은 메뉴를 시켰습니다. 볶음밥 같은 다른 메뉴를 주문해 식사 시간을 늘리는 ‘눈치 없는’ 임원은 눈총을 받기도 했답니다. 김 전 회장은 식사를 워낙 빨리해 마지막에 음식이 나온 임원은 자장면을 비벼 보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는 일화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 그가 기내식을 거절하며 ‘설렁탕’을 떠올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 전 회장은 5년 8개월 동안 프랑스 수단 베트남 중국 등을 돌며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에 기내식은 물릴 정도로 많이 먹었을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인의 눈을 피해 다녀야 했던 만큼 한국 식당을 찾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조사를 받으며 김 전 회장이 먹은 음식을 보면 외국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 먹고 싶어할 만한 것들이 망라돼 있습니다. 첫날 아침은 북엇국, 점심은 된장찌개, 저녁에는 김치찌개를 주문했습니다. 또 라면을 먹고 싶어 해 김치찌개에 라면까지 넣어 먹었답니다. 15일에도 미역국 등 한식메뉴가 계속 등장했답니다.

김 전 회장은 현재 만 69세, 한국나이로는 7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5대양 6대주를 종횡무진하며 ‘세계 경영’을 이끌어 ‘킴기스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김 전 회장도 나이가 들어 고국 음식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박중현 경제부 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