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7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던진 메시지에 정부는 크게 고무된 반응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벌써 북의 ‘성의’에 호응해 비료를 추가 지원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진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미 국무부는 김 위원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6자회담 복귀를 위한 어떤 ‘당근’도 없을 것임을 재확인했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다 강경한 대북 자세를 요청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미일의 이런 반응은 김 위원장의 ‘말 따로 행동 따로’의 결과다.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발언만 해도 그렇다. 올해 들어 핵보유 선언(2월 10일), 6자회담의 군축협상 전환 주장(3월 31일), 폐연료봉 8000개 인출 완료 발표(5월 11일)로 이어진 ‘벼랑 끝 핵외교’ 행보가 말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비핵화 발언이 진심이라면 지금까지의 행태는 김 위원장의 뜻과 다르다는 말인가. 더욱이 김 위원장의 발언은 공동성명이나 발표문, 기자회견 등을 통한 공식 입장이 아니라 정 장관의 전언(傳言)일 뿐이다. 북측이 상황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말을 뒤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니라 핵문제의 실질적 해결이다. 6자회담 복귀는 그 입구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대하는 한국과 미일의 시각차는 대북공조에 틈새를 키울 우려마저 있다. 정부가 평양 면담의 진상을 우방국들에 정확하게 전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특히 불필요한 오해나 사후 논란을 피하기 위해 면담 내용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그 대가로 거액을 비밀 송금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국론분열까지 빚었던 전례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에 대한 예의상 미주알고주알 밝힐 수 없다”는 정 장관의 말은 이런 점에서 오해를 살 만하다. 국민과 우방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밀실흥정’이 있었다면 더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