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남측 대표단의 오찬 얘기 등 공개되지 않은 뒷얘기들이 속속 알려지고 있다.
17일 북한 대동강 영빈관에서 오후 1시 반경부터 2시간 20분가량 계속된 오찬에서 김 위원장은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갔고 농담도 잘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 오찬에서 김 위원장은 “누구든 자신을 깔보면 화가 나지 않겠느냐”면서 “언어 표현을 조심하자”고 말했다고 김민하(金玟河)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밝혔다.
김 위원장은 “남북이 서로 교류협력을 하면서 습관적으로 용어를 잘못 쓰고 있다. 우리는 ‘남쪽 동포’나 ‘남쪽 형제’라고 하면 좋을 것을 ‘남조선 아이들’이라고 한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남쪽에서도 양식을 먹고, 양주를 마시고, 양복을 입으면서 왜 ‘미국 놈’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남북이 언어순화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폭탄주 얘기도 나왔다. 김 위원장은 “남쪽에서는 폭탄주가 유행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가 남쪽에 갔다가 배워와 (북한에) 유행시키고 있다”며 “오늘은 (대표단 일행이) 비행기를 타야 하고 점심이니 다음에 폭탄주를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는 “‘불멸의 이순신’ 등 남쪽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면서 “하지만 (드라마에서 나오는 언어의) 악센트 차이 등으로 인해 남쪽 젊은이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우리는) 남북 언어 이질화를 막기 위해 한문 공부를 많이 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정 장관에 대해 “젊었을 때부터 봐 왔다. 잘생긴 얼굴인데 (요즘) 얼굴을 계속 찡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얼굴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오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에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 전날 또는 당일 새벽에 면담이 확정됐다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으나 이는 ‘보안상’ 그런 것”이라며 “면담 참석자들은 며칠 전부터 김 위원장이 면담에 응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민간대표단으로 방북 길에 동참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에 적대적이던 북한이 예상 외로 엄청난 환대를 해줬다”고 소개했다.
북한 양형섭(楊亨燮)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이 14일 통일대축전 개막식 축하연설에서 “한나라당 의원들도 와 계시다”고 밝히자 평양 시민들이 “와∼”하고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고 한나라당 원희룡(元喜龍) 의원은 전했다.
그러나 북한 평양방송은 18일 “한나라당은 남조선 정국을 혼란 속에 밀어 넣는 깡패 무리”라고 밝혀 이 같은 분위기와 대조를 이뤘다.
○…김 위원장과 정 장관의 면담 및 남측 대표단과의 오찬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드러나지 않은 한 인물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서훈(徐薰) 통일부 실장(1급)이 주인공. 서 실장은 이번 방북 과정에서도 대북 막후 접촉과 전략기획을 지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0년 10월 2차 남북 장관급회담 중 박재규 당시 통일부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난 자리, 2002년 임동원 당시 대통령통일외교안보 특보가 대북특사로 방북해 김 위원장과 면담하는 자리에도 배석했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