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망치는 ‘실책의 축’은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 교수와 운동권 출신 참모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장관들, 집권당 고성(高聲)그룹인가.
목표 적중에 전방위로 실패한 책임을 분담해야 할 대소주주(大小株主)의 분포는 훨씬 광범위하다고 본다. 그러나 ‘책임 지분’은 ‘정책권력 지분’과 비례해야 정상이다.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 부동산정책을 2년쯤 주도했다면, 국민 앞에 거적을 까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권이 중심가치라고 한 ‘양극화 해소’가 ‘상하극(上下極) 비대화’로 확연히 역류했는데도 ‘부동심(不動心)’ 운운한다면 사림(士林)답지도 못하다. 세금에 ‘밥값’할 의무가 있는 정책책임자가 ‘시장의 본능, 돈의 생리’를 읽지 못했음이 결과로 드러났다면 그런 경제학은 버려야 옳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앞뜰에서 석고대죄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만큼은 내가 직접 챙긴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총감독이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도 섣부른 국토 전면 성형(成形) 시술로 토지 투기에 기름을 끼얹어, 전국적 땅값 폭등과 이에 따른 부작용 후유증을 양산한 데 대해 큰 지분의 책임을 안아야 한다. 부동산 값 안정 없이는 ‘바른 경제’가 안 된다고 강조해 온 정권이라서가 아니라, 땅값 앙등이 정책과 투자의 비용 급증을 낳는 등 경제를 구조적으로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돈이 부동산 아닌 금융시장과 생산적 투자처로 흐르도록 유도하지 못한 복합적 정책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자가 더 많다.
한덕수 부총리는 부동산정책과 국토개조정책의 2선(線)에 있었다 해도, 정책 오도(誤導)를 막지 못한 책임은 져야 한다. 그는 현실 진단에 있어서도 중대한 오진(誤診)을 하고 있어, 정부가 정책 약화(藥禍)를 더 키우지 않을지 우려하게 한다. 어제 그는 부동산 문제를 ‘시장의 실패’로 몰아갔다. 시장은 정책이 만든 물줄기를 타고(선용이건 악용이건, 이용해) 각각의 목적지로 가려는 돈의 집합체다. 본성이 철저하게 이기적인 돈이 ‘적절한 속도로, 바람직한 방향을 향해’ 흐르도록 하는 게 정책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정책은 시장의 쏠림 현상을 완화하기는커녕 더 심화시켰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이 기업인들의 불만대로, 투자심리에 찬물을 끼얹은 중심축이었다면 임기(任期) 따질 것 없이 보따리를 싸야 경제 국익에 도움이 된다. 생산적 국내 투자의 부진은 저성장, 일자리 부족, 소득 양극화, 소비 위축, 자영업 위기 등과 연결된다. 수백 조원의 부동(浮動)자금과 기업 유보자금이 건전한 투자에 매력과 자신감을 느끼도록 제도를 고쳤다면 부동산투기가 덜하고 자원배분 왜곡이 개선됐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이·성·한·강 씨 같은 당국자들이 책임져야 할 이유를 모르거나,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설혹 내심으로 책임을 느끼더라도 억울한 심정이 앞설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동기에서 정말 잘해 보려고 했는데 시장이 반란을 일으키고, 여기저기서 발목 잡는 바람에 꼬여 버렸다.’ 이 위원장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린 글도 요컨대 이런 항변이다.
이들이 제시한 목표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도처의 경제력 격차, 빈부 격차, 대소 격차, 신분 격차, 기회 격차를 줄이는 일은 ‘바로 된 정권·정부’라면 마땅히 꿈꾸고 이뤄 내야 할 과제다. 이런 숙제를 최대한 풀어야 사회갈등이 줄고 ‘서로 등 돌리고 증오·분노하는 세상’을 ‘서로 손잡고 협력·생산하는 나라’로 바꾸기도 쉽다.
노 정권 사람들이 ‘적은 수(數)의 크고 잘된 그룹’을 때려 ‘많은 수의 작고 못난 그룹’을 내 편으로 만들려는 정치적 포퓰리즘에 많이 좌우되더라도 ‘동기가 불순하다’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결과로서 ‘작고 못난 그룹’의 행복도(度)가 실제로 높아진다면 좋은 일이다.
문제는, 동기가 순수했건 불순했건 결과가 목표와 역(逆)방향으로 너무 빗나갔다는 사실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순수한 동기’를 되뇐다면 ‘단순한 무능’의 속살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말을 흉내 내서 뭣하지만, 과녁이 움직인다고 탓하는 포수로는 안 된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