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이나 관점에 따라 편차가 큰 편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인들과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본 한국 정치인들의 평가는 극도로 대비된다.
부시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국민을 굶기는 위험한 사람’으로 평가했다. 딕 체니 부통령도 ‘국민의 빈곤과 굶주림을 방치하는 가장 무책임한 지도자’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평가는 대개 그런 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인간적인 호감도 느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을 만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시원하고 결단력 있는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면담 분위기가 ‘진지하고 솔직하고 따뜻했다’는 말로 그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정 장관은 곰발통찜, 상어날개인삼탕 같은 최고급 요리로 환대를 받았다. 인권 문제처럼 분위기를 흐릴 ‘부정적인 사안’은 얘기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자들에게 면담 결과를 설명할 때에는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난 흥분과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김 위원장을 5시간이나 만난 정 장관의 평가를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10년 이상 절대 권력을 행사해 온 북한이 왜 저 지경에 있는지는 궁금할 수밖에 없다.
‘괴팍한 성격의 은둔자’로 알려졌던 김 위원장을 한국 사회와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시킨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남북정상회담 5주년 국제학술회의 기념만찬에서 김 위원장이 이치에 맞는 말은 즉석에서 수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고 호평했다.
서울 답방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지만 김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세상이 다 아는 효자이고 동방예의지국의 도덕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공개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조차 “대화하기 편한 상대”라고 평한 걸 보면 김 위원장에겐 분명히 인간적 호감을 느낄 요소들이 있는 것 같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김 위원장을 만난 몇 안 되는 미국인 중 한 명이다. 그가 자서전 ‘마담 세크러터리’에서 밝힌 김 위원장에 대한 소감은 좀 더 균형이 잡혀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지적인 인물이라는 김대중의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라는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절망이나 걱정의 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감에 넘치는 듯했다. 자신이 들은 아첨을 진정으로 믿고 있고 자신을 국가의 보호자이자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추측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난 사람들의 평가는 면담 기회를 준 데 대한 고마움과 그 면담의 분위기, 그리고 그의 말솜씨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인간 김정일’에 대한 평가와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평가도 다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에 대한 인간적인 평가가 그가 독재자이며 역사는 그의 편이 아니라는 점을 가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권순택 워싱턴 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