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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동관]‘미국 친구’들의 한국 걱정

입력 | 2005-06-22 03:05:00


“한국의 반미(反美)감정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 내 반한(反韓)감정이 심각해지고 있다.”

한미동맹 관계에 본격적으로 ‘빨간 불’이 켜진 후 이런 얘기는 워싱턴과 서울, 어느 쪽에서도 새로울 게 없는 구문(舊聞)이다. 그런데도 양국 간 안보 현안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설명을 들으면 늘 ‘별문제가 없다’는 쪽에 가깝다. 반면 미국 쪽의 설명은 감도(感度)가 다른 경우가 많다.

10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 직후 우리 정부는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에 합의한 성공적 회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워싱턴 쪽의 평가는 대체로 ‘동맹관계의 악화는 막았지만 대북(對北) 인식의 본질적인 갭을 메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예정에 없이 대북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회담에 배석한 경위에 대한 설명도 달랐다. 우리 측은 “유럽 아시아 순방에 나섰던 럼즈펠드 장관이 예정보다 일찍 귀국하는 바람에 배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미 정부 관계자는 “당초 정상회담에서 다루지 않기로 했던 ‘동북아 균형자론’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럼즈펠드 장관이 의제에 포함시키도록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강력히 건의한 뒤 이 논의를 위해 직접 배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교에는 공식적으로 밝힐 수 없는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국 쪽에서 전해 오는 비공식적인 얘기가 실체적 진실에 가까운 경우가 유달리 많아졌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방한했던 한 지한파(知韓派) 미국 학자는 “수많은 경고 신호가 있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주한미군을 철수시키지 못할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 국방부 내부에서 이미 한국을 ‘전환기의 동맹(transiting ally)’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한국은 더 이상 미국의 동맹이 아니라는 얘기는 이제 공화당 민주당 가릴 것 없이 의원보좌관들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얘기”라고 전했다.

곧 닥칠 대북 인권 공세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감각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소리가 많다.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진영에 가까운 한 인사는 “한미 정상회담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이 탈북자 출신의 한국 기자를 백악관에 초청한 것은 한국과 북한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탈북자들에게 영주권을 대량 발급해 북한을 내부로부터 동요시킨다는 것이 미 행정부 내 네오콘의 복안”이라고 귀띔했다.

개인 간에도 듣기 거북한 얘기나 깊숙한 속내는 친한 친구가 아니면 털어놓지 않는다. 외교관 세계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물의를 빚었던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한국과의 정보 공유 불가’ 발언도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이미 김대중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민족 공조’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필자는 일본의 한 지인에게서 “대북정보를 총괄하는 일본 내각조사실이 한국 정보기관과의 정보 교류를 꺼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부시 행정부가 오른쪽으로 간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함께 ‘우향우’를 외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한국을 걱정하는 외국 친구들의 얘기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들의 말에 공식 채널을 통해서 다 감지할 수 없는 실체적 진실이 상당 부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