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으면 글도 잘 써야 하는데, 정작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분명 독서량이 많은데도 학교에서 일기나 독서기록부 등의 숙제를 내 주면 끙끙대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부산을 떨곤 한다.
책 읽기가 입력이라고 본다면 이는 분명 글쓰기로 출력이 되어야 하는데,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그게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많이 읽은 아이가 잘 쓸 가능성이 많지만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독서에 대해 학부모들이 기대하는 능력 중 하나는 생각하는 힘, 곧 사고력일 것이다. 독서를 많이 했으니, 아는 게 많을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토론도 잘할 거라는 기대는 종종 빗나가기 일쑤다. 자신이 많이 알고 있는 토론 주제가 나와도 횡설수설하거나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하는가 하면, 말문을 연다 해도 한두 문장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토론이나 논술의 배경지식을 책을 통해 충분히 얻었을 텐데 왜 그러는 것인지 학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하기만 하다.
토론은 어떤 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타당한 근거를 기반으로 주장하고, 따져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렇다면 토론에 앞서 쉽고 편하게 말하기부터 해 보는 건 어떨까? 평소에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도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해 주자. 가정의 어떤 일을 결정할 때나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서도 “네 생각은 어떠니?” “왜 그렇게 생각하지?” 하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되, 상대방의 이야기를 무시하고 억지 주장을 하거나 근거도 없는 맹랑한 이야기는 경계하는 게 좋다.
책을 읽은 뒤 감상을 말하게 해 보는 것도 좋다. 이때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아보자.
“이 그림 진짜 웃기지 않니? 이 주인공은 꼭 너 닮았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렵다. 몇 번 봐도 모르겠어” 등등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대답을 할 수 있는 것들부터 말문을 열어 보자.
TV나 신문을 보면서 자기 생각을 얘기하게 해 보는 것도 좋다. 뉴스를 함께 보면서 그 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신문광고 등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 학부모 스스로가 질문에 대해 너무 부담을 갖지 말고, “이 광고 보면 아이스크림 맛있을 것 같니?”, “이 광고에서는 뭐가 눈에 들어오니?”와 같이 일상에서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함께 의견을 나누면 된다.
이때 아이가 자신만의 생각을 정확히 얘기하도록 하되, 어떤 이유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말하도록 유도하면 더 좋다.
방송에서 나온 내용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 보도록 유도하자. 그러면 토론할 때 상대방 말뜻을 몰라 딴말을 하는 일이 적어지고, 토론의 기본이 되는 듣기 훈련도 된다.
독서를 쓰기와 연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독서, 토론, 글쓰기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 치우치거나 부족하면 균형을 잃게 된다. 논술고사를 의식해 어릴 때부터 논술쓰기를 하는데 이는 오히려 위험한 발상이다.
6학년 이전까지는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게 좋으며, 생활 속에 필요한 일기, 편지를 비롯해 시나 감상문 등을 수월하게 쓰는 아이들이 논술쓰기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자칫 너무 빨리 논술쓰기로 가는 것은 글쓰기의 기능만을 익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선천적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자아표현욕구가 있는 한 글쓰기 능력은 향상될 수 있고 어린이들은 연습이나 교육에 의해 충분히 발전한다.
오길주 문예원 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