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줌인]정겹고 한번 들으면 머리에 쏙~‘촌티 이름’전성시대

입력 | 2005-06-24 05:17:00

사진 제공 MBC, SBS


“이름 바꿔줘. 우앙∼.”(삼순이)

“부르기도 좋고 다정해 얼마나 좋으냐.”(삼순이 아버지)

MBC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한 장면. 삼순이 아버지는 집안에 ‘삼순이 꽃밭’ ‘삼순이 그네’ 등 여러 팻말을 달아주며 이름 때문에 우는 어린 삼순을 달랜다.

최근 화제작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이름이 촌스럽다. 삼순이뿐 아니라 MBC 일일드마라 ‘굳세어라 금순아’의 금순이, 개봉을 앞둔 영화 ‘친절한 금자씨’(감독 박찬욱)의 금자까지.

현실에서도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들이 많다. 어릴 때 세련된 이름과 대비돼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이름 때문에 울고 웃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 그래도 내 이름이 좋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개그맨 정삼식(26) 씨. 학창시절 그는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이 출석을 처음 부르는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정삼식!” “…네.” “우하하하….” 대답만 하면 공식처럼 아이들의 웃음보가 터지곤 했다.

고등학교 때 미팅에 나가 이름을 속였다. “민이라고 해요.”

그러나 지나가던 친구가 그를 보고 아는 체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다 깨졌다.

“야, 삼식아!” “헉,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그 뒤 여학생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씨는 인기 개그맨이 되는 데 이름 덕을 톡톡히 봤다. 그의 준수한 외모와 ‘삼식’이라는 이름의 부조화로 팬들의 뇌리에 쉽게 각인됐기 때문이다. 그는 “개명하려고도 했지만 지금은 자랑스럽다”며 “드라마 김삼순에서도 현빈 씨 애칭이 삼식이지 않으냐”고 웃었다.

인터넷 여행사 ‘쉘위투어’(www.shallwetour.com)의 박삼식(37) 사장은 첼로 연주가 취미인 지적인 여성. 언니와 동생은 각각 이식, 우식 씨, ‘식(植)자매’다. 학창시절 친구의 엄마들은 딸의 수첩에서 그 이름을 보고 남자 친구인 줄 알고 놀라기도 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사업을 하다 보니 누구나 이름을 기억해줘 도움이 된다”며 “특이한 이름 때문이라도 잘못하고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경남 양산시 웅상읍에서 사업을 하는 허봉(41·에폭시 상사 대표)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허 씨는 “어릴 적 ‘봉봉(주스)’ ‘따봉’ ‘봉잡았다’ 등 봉으로 시작하는 말 때문에 학교가기 싫을 때도 많았다”며 “그러나 사회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이름 덕분에 상대와 쉽게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백승호(43·강성원우유 이사) 씨는 집안의 돌림자가 ‘동’이어서 아들 이름을 ‘계동’이라고 지었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종종 ‘개똥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아들은 오히려 포용력 있게 웃어 넘기며 학교에서 반장을 도맡아 했다.

드라마 원작인 소설 ‘내 이름은 김삼순’의 작가 지수현 씨는 “촌스러운 이름에 실수를 많이 하고 덜렁거려도 즐거운 삼순이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다”며 “책을 보고 본명이 김삼순이라는 분들이 e메일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전국에 ‘김삼순’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3000여 명에 달한다.

○ 개명하거나 가명을 쓰거나

촌스러운 이름보다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풍기는 이름이 더 고민. 일부는 개명을 신청하기도 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개명을 신청하는 사람은 2002년 4만6743명, 2003년 5만1719명, 2004년 5만3474명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 중 약 80%가 허가를 받았다.

개명 신청을 대행하는 이근우 법무사는 “성별 구분이 안 되거나 놀림감이 되는 것 또는 흉악범의 이름과 같거나 발음이 어려운 것 등이 개명 신청의 사유”라며 “개명은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법원이 부득이한 사유를 감안해 허가한다”고 설명했다. 소요 기간은 한 달 반에서 두 달.

그동안 개명 신청을 대행해 준 이름에는 김쌍순 오공주 김월매 신말남 장매춘 나죽자 강도야 김치 등이 있었다. 아름 초롱 새롬 슬기 등 1980년대 후반 붐을 이룬 한글 이름을 개명하려는 이들도 많다. 정부나 기업에서 중책을 맡거나 나이가 들었을 때 어색하다는 이유에서다.

한 홍보대행사의 여성 사장(35)은 ‘순옥’이라는 본명 대신 세련된 이름으로 2년 전 개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 순옥이라는 이름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홍보 일과 이미지가 맞지 않아 개명했다”고 말했다.

연예인 예명은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경우. 황신혜(황정만) 심혜진(심상군) 강타(안칠현) 현빈(김태평) 송승헌(송승복) 등은 이미지와 다른 느낌의 실명으로 회자되는 사례다. 배용준의 본명이 ‘배춘배’라는 소문도 인터넷에서 떠돌았으나 배용준은 본명 그대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성명학자“이름은 사주 보완해 주고 五行이 상생해야”▼

한국성명학회 김광일 회장은 “말에는 에너지가 있어 좋은 이름을 불러주면 좋은 기운이 전달되고 멀쩡한 사람에게도 자꾸 바보라고 하면 정말 바보가 된다”고 말했다.

성명학에서 좋은 이름은 사주(四柱)를 보완해 준다고 한다. 여름에 목(木)의 사주를 갖고 태어났는데 수(水)가 없으면 목마른 나무가 되니 수(水)가 들어가는 글자로 이름을 짓는 식이다.

이름의 획수도 중요하게 여긴다. ‘김삼순’일 경우 △삼+순의 한자 획수를 원격(元格) △김+삼의 한자 획수를 형격(亨格) △김+순의 한자 획수를 이격(利格) △김+삼+순의 한자 획수를 정격(貞格)이라고 한다. 원격은 초년, 형격은 청년, 이격은 중년, 정격은 말년의 운. 격의 숫자가 1, 3, 5, 6, 8, 11, 13, 15, 16, 17, 18, 21, 23, 24, 25, 29, 31, 33, 35, 37, 38, 39, 41, 45, 47, 48, 52인 것이 좋다고 한다.

발음에서는 오행(五行)이 상생해야 한다. ‘김태희’라면 초성이 ㄱ ㅌ ㅎ 이고 이는 오행에서 각각 목(木) 화(火) 토(土)인데 목화와 화토가 상생이라 좋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또 한자 획수가 홀수면 양(陽), 짝수면 음(陰)이다. 대(大)자는 3획이므로 양이다. 획수가 10 이상이면 10을 제외한 나머지 획수로 구분한다. 이름 석 자가 모두 양이거나 음이면 좋지 않다고 한다.

흉(凶) 망(亡) 병(病) 악(惡) 등 뜻이 나쁜 글자는 쓰지 않지만 성명학자들은 애(愛) 미(美) 인(仁) 자(子) 홍(紅) 운(雲) 명(明) 철(鐵) 도(挑) 돌(乭) 분(分) 월(月) 하(夏) 말(末) 등도 ‘불용(不用)문자’라 부르며 쓰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30여 년간 이름과 실제 운명을 분석해온 성명학자 맹정훈(동아사이버문화센터 강사) 씨는 “이름의 획수나 발음은 중요하나 뜻으로 보는 불용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불용문자를 거론하는 것은 연구자들이 이론에만 매달리고 실상을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