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렌토의 바다. 시레나의 유혹의 노래가 귀를 자극하는 듯하다. 사진 정태남 씨
나폴리에서 베수비오 순환 전철(Circumvesuviana)을 타고 나폴리만의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향한다. 베수비오 화산 주변의 작은 해안 도시들을 연결하는 이 전철의 종점은 소렌토이며, 약 40분 걸린다.
종점에 가까워지면서 가파른 절벽이 바다에 내리 꽂히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레몬과 오렌지 향기가 바다 바람을 타고 날릴 때가 되면 바다의 요정이 어디선가 부르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선율이 들려오는 듯하다.
소렌토역 광장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Giambattista De Curtis)를 기념하는 청동 흉상이 있다. 흉상 아래에는 소렌토 시(市)가 1982년 ‘돌아오라 소렌토로’ 발표 80주년을 기념해 그에게 헌정한다는 글귀가 있다. 잠바티스타는 이 노래의 작사가다. 그러면 작곡가의 흉상은 어디에 있을까?
○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 르네상스 시인 ‘타소’의 고향
남국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소렌토 시의 거리는 스위스가 연상될 만큼 깔끔하게 정돈돼 있으며 건물들은 품위있고 고급스러운 휴양지라는 점을 실감하게 한다. 소렌토 시와 인근 지역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아 온 곳이다.
소렌토라는 지명은 로마인들이 이곳을 시레나(Sirena)의 땅이라는 뜻으로 수렌툼(Surrentum)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시레나는 달콤한 노래로 뱃사람들의 넋을 잃게 한 뒤 바다에 빠져 죽게 했다. 지중해 모험을 마치고 배를 타고 귀향하던 율리시즈는 그녀의 노래를 듣고 싶어 몸을 돛대에 동여매고,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게 한 뒤 이 바다를 지나갔다고 한다. 이 전설의 무대가 나폴리와 소렌토 앞 바다다.
고도(古都) 소렌토에서는 로마시대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빼어난 경치와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 타소의 고향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내세울 게 없다. 그럼에도 외국 관광객들은 이곳을 꼭 한번 찾아보려 한다. 왜냐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라는 노래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 호텔 ‘트라몬타노’와 지중해의 조화… 괴테 바이런도 감탄
소렌토 해변에는 1812년 세워진 고급호텔 ‘트라몬타노’가 있다. 이 호텔에서는 나폴리만을 배경으로 하는 지중해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괴테, 바이런, 스콧, 셸리, 키츠, 롱펠로, 입센 등 수많은 문인들이 이곳에서 절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1891년 이 호텔의 트라몬타노 사장은 나폴리 예술가 집안의 젊은이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를 고용한다. 그는 그림과 조각뿐 아니라 음악과 시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호텔의 테라스에서 시적인 영감을 얻곤 했다. 그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도 했지만, 음악은 동생 에르네스토(Ernesto)가 더 뛰어났다.
1902년 이탈리아 총리가 남부이탈리아 가뭄 현장을 순방하는 길에 이 호텔에 묵었다. 당시 소렌토 시장이기도 했던 트라몬타노는 총리에게 우체국 설립을 청원해 약속을 받아냈다. 트라몬타노는 총리가 약속을 잊지 못하도록 두 형제에게 노래를 하나 만들게 했다. 이렇게 해서 형이 작사하고 동생이 작곡해 탄생한 노래가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다. 수리엔토(Surriento)는 소렌토(Sorrento)의 나폴리식 표기다. 소렌토를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는 듯 하면서 소렌토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이 노래는 나폴리 피에디그로타 가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세계적인 명곡으로 알려졌다.
○ 우체국 청원가 ‘돌아오라 소렌토로’ 세계인 애창곡으로
에르네스토가 쓴 작품들은 오늘날도 감상의 늪에 빠질 듯하면서도 품위있는 서정성을 유지하는 노래로 평가받는다. 그는 세계적인 테너 질리(B Gigli)의 반주자로 활동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질리는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비롯해 에르네스토의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그중 도메니코 푸르노의 시에 부쳐 작곡한 ‘날 잊지 말아라(Non ti scordar di me)’도 ‘돌아오라 소렌토로’에 이어 세계적인 명곡으로 알려졌다.
그러고 보면 소렌토 시가 정작 기념해야 할 이는 작사자(잠바티스타)보다 작곡가(에르네스토)일텐데 그를 위한 기념상은 없다. 그 까닭이 궁금하기만 하다.
소렌토의 가게에서는 주변의 절경과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악보가 있는 엽서 등 기념품을 판다. 그 중 만돌린 모양의 조잡스러운 기념품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많이 끈다. 태엽을 돌리면 ‘돌아오라 소렌토’의 선율이 시레나의 유혹처럼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정태남 재이탈리아 건축가 www.tainam-jung.com
※ 정태남의 유럽음악기행은 이번 회로 끝납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작사자 잠바티스타 데 쿠르티스의 흉상.
▼해안선 잇는 미항들 앞바다엔 카프리 섬▼
소렌토 시는 소렌토 반도의 서쪽 끝에 있고, 해안을 따라 계속가면 포지타노(Positano)나 아말피(Amalfi)와 같은 작은 항구 도시들이 이어진다. 소렌토 앞바다에는 로마 제국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조용히 말년을 보냈던 카프리(Capri) 섬이 있다. 하나 덧붙인다면, 한국도 이에 못지 않게 아름다운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올 듯한 풍광을 갖추고 있지만 마구잡이 건축물로 훼손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