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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캄보디아에 영성공동체 추진

입력 | 2005-06-25 03:02:00

이달 초 캄보디아를 방문한 서울 가르멜여자수도원 소속 수녀들이 전란 속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온전한 옛 가르멜수도원 건물을 둘러봤다. 그러나 이 건물은 현재 국영 보육원으로 사용되어 한국 수녀들은 이 대신 장군의 사택을 임시 수도원으로 쓰기로 했다. 사진 제공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


《천주교 관상수도회(觀想修道會)는 수행자들이 철저히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는 곳이다. 봉쇄구역에서 기도와 묵상, 노동에 전념하는 수도회로, 세속에서 봉사하는 활동수도회와 대비된다. 일반 신자는 아예 접근조차 못하고 신부나 수녀 등 성직자들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다. 수행자도 아프거나 죽거나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외부로 나오지 못한다. 가족 친지도 수행자를 수도원 내의 면회소에서만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 관상수도회인 서울 강북구 수유5동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에 22일 오후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수도원 소속 수녀 5명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일반 신자들 앞에서 베일에 가려진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이날 봉쇄구역인 철제문 안쪽 내부 성당에서 ‘수도원 설립 65주년 기념 및 캄보디아 파견 미사’를 드리고 있던 30명의 수녀 중 5명이 원장수녀의 안내로 제대(祭臺) 앞으로 나와 외부 성당에서 함께 미사를 보던 일반 신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수녀들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게 된 신자들은 감격했다. 더구나 신자들은 이들이 험한 선교지로 떠난다는 사실에 눈시울을 붉히며 우렁찬 박수로 격려했다.

22일 서울 가르멜여자수도원 외부성당의 일반 신자들이 정진석 대주교의 집전으로 철제문 안쪽 내부성당의 수도원 수녀들과 함께 ‘수도원 설립 65주년 기념 및 캄보디아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5명의 수녀들은 곧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으로 건너가 또 하나의 가르멜여자수도원을 창립, 영성생활공동체를 키워 나갈 계획이다. 1940년 프랑스에서 건너온 가르멜수도회가 한국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뿌리내리고 꽃을 피운 뒤 외국으로 새 가지를 뻗는 셈이다. 한국 관상수도회의 첫 해외 진출이란 의미도 있다.

서울가르멜수도원의 성당은 제대를 중심으로 내부성당과 외부성당으로 나뉘어 있는 Y자 구조. 외부에서 온 일반 신자들은 외부성당에서, 수도원의 수녀들은 제대 옆 철제문을 경계로 안쪽의 내부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도 안쪽에 30명의 수녀가 미사를 올리는 모습이 그물형 철제문 사이로 드문드문 보였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5명의 수녀님들이 천사처럼 웃고 있지만 이들을 보내는 나의 마음은 아프다”면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녀님들이 지치는 일이 없도록 하느님께서 그 마음을 굳세게 해 달라”고 기원했다.

원장수녀는 “캄보디아 구호물자 조달을 위해 많은 신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02-902-1489, seoulcarmel@hanmail.net)

국내 가르멜여자수도원들의 종가(宗家)인 서울가르멜여자수도원의 캄보디아 진출은 3년 전 방한한 프놈펜 대목구 총대리 브루노 신부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그 뒤 현지를 방문한 수녀들은 공산정권이 성당과 수도원을 모두 파괴했지만 유독 옛 가르멜수도원 건물만 온전한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준비 끝에 일을 성사시켰다.

전통적으로 소승불교 국가인 캄보디아는 천주교 신자가 2만 명(인구의 0.15%)으로 3개 교구에 사제 39명을 확보하고 있으며 관상수도회는 전무하다. 캄보디아 교회는 1970년대 내전과 ‘킬링필드’로 일컬어지는 공포정치 속에서 붕괴되었다가 1990년대 이후 종교의 자유를 얻어 조금씩 소생하고 있다.

한편 이 수도원은 65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을 22, 23일 구내에서 가져 관심을 끌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