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교정쇄는 ‘편집자의 악몽’이다. 그는 악필로 휘갈겨 쓴 원고가 활자화돼 나오면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거품 같은 글씨로 고치고 또 고쳤다. 사진 제공 생각의 나무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알랭 드 보통 지음·지주형 옮김/272쪽·1만 원·생각의 나무
생전에 이미 셰익스피어에 비유되었던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성가가 치솟던 1921년 말, 그는 한 미국 여성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지난 3년간 프루스트의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 여성은 이렇게 적었다.
“절대적으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말고는, 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문가들조차 “프루스트가 그의 전 생애에 걸쳐 파 놓은 ‘땅굴’ 같은 작품”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단테의 신곡이 그러하듯 아무도 읽지 않고 오랫동안 칭찬받고 있으므로 칭찬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저자는 당돌하게도(?) 이 난해하기만 한 ‘20세기의 고전’을 인생 지침서로 읽는다. 프루스트의 편지와 메모에 유머와 상상력을 버무려 ‘문학의 탈을 쓴 인생교본’(아마존닷컴)으로 빚어냈다.
마치 ‘모자에서 토끼를 끄집어내는 것 같은’ 저자의 솜씨에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영국 BBC는 영화로까지 만들었다.
그의 글은 재기로 넘친다.
“창녀들이 우리를 매혹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우리를 준비상태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늘 밤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스스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프루스트는 이 책에서 곧잘 희화화된다. 그의 동성애 성향에 대한 코멘트.
“그 X양에 대해 말하자면, 마르셀은 A양으로부터 Z양까지 어느 여성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차가운 맥주 한 잔이 섹스보다 낫다는 결론을 얻고 나자 더 이상 근처에 젊은 남자가 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러나 독자들이 저자의 ‘악의 없는 농담’에 푹 빠져드는 새, 정작 마주치는 것은 비켜 갈 수 없는 삶의 평범한 진리다.
“불면증을 겪고 나서야 우리는 잠에 대해 감사한다. 그것은 어둠 속에 던지는 한 줄기 빛과 같다.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으니 이렇게 말할까. 나는 앓는다, 고로 생각한다!”
원제 ‘How Proust Can Change Your Life’(1997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