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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권장도서 100권]일리아스·오디세이-호메로스

입력 | 2005-06-27 03:11:00


서양의 고전 목록에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일리아스)와 ‘오디세이’는 맨 앞자리를 차지한다. 두 서사시는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서양의 고대사가 막을 여는 기원전 8세기 중·후반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작품의 내용은 그때까지 전승되어 온 구전시가(口傳詩歌)를 바탕자료로 구성된 것인데, 그 자료의 주된 소재인 신화나 전설이 형성된 시기까지 염두에 두자면 다시 수세기를 뒤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 이전의 아득한 옛날에서 작품의 연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유명한 작품이지만 의외로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 번안이 아닌 원전의 완역을 구해 읽기 시작하면 우선은 꽤 생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느낌은 무엇보다도 우리와 작품 세계 간의 시간적인 거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독자는 선사와 역사의 접경지대로 이동하여 문명 발생의 초기 모습과 아울러 그 이전 시대의 흔적까지도 직접 만나게 된다.

호메로스가 구성한 이야기의 주제는 매우 고전적인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죽음으로 끝이 날 고난의 길로 나서는 적극적인 결단을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유지하려 든다. ‘일리아드’의 아킬레우스는 적장과 싸워 이기는 것이 운명적으로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아킬레우스답고자 그 싸움에 임한다. ‘오디세이’의 오디세우스는 거저 주어진 불사의 행운을 거절하고 인간 오디세우스로 남기 위해 험난한 귀향길로 떠난다.

작가는 인간의 삶이 고난으로 가득하고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에 불과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영웅이 영웅 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한 철저한 긍정을 선언한다. 그 철저함은 인간의 존재가 아무런 노력 없이 보장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신의 존재보다 더 값진 것이라는 명백한 시사에서 더없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작품의 주인공들이 비장한 영웅의 면모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은 단호하고 때로 비정·잔혹하기까지 하나, 자신과 적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결국은 신들의 장난에 동원된 꼭두각시와 같은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 겪는 비참함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듯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그려 보여주면서 작가는 후대에 그 자신도 답을 확정해 갖지 못한 인간 탐구를 계속적인 과제로 던져 주고 있다. 문명의 초기에서부터 인간에게는 인간 자신이 그처럼 큰 과제였던 것이다.

그의 작품이 후대의 문학사에 끼친 지대한 영향도 그가 던진 과제의 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읽는 것은 그 과제와 씨름을 해온 역사의 발단을 반추(反芻)하면서 서양의 문학사 전반을, 그리고 또 앞으로 전개될 인간의 문학적 노력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소양을 갖추는 일이다.

우리말 번역으로는 천병희 역(단국대출판부)이 유일한 그리스어 원문 번역이다.

이태수 서울대 대학원장·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