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멱,사)의 중간은 꼰 실타래를, 아래위는 첫머리와 끝머리를 그렸는데, 지금은 실타래와 끝머리만 남았다. 그래서 (멱,사)은 비단실이 원래 뜻이며, (멱,사)이 둘 모인 絲(실 사)와 대비해 ‘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파생된 系(이을 계)는 삶은 고치에서 손(爪·조)으로 뽑아낼 때 실((멱,사))의 ‘연이어진’ 모습을, 요(작을 요)는 아래 위의 머리가 없는 실타래만 그려 ‘작음’을 나타냈다.
‘실크(silk)’가 絲의 대역어임에서도 볼 수 있듯, 비단은 중국의 대표적 물산이었고 갑골문이 쓰였던 상나라 때 이미 이의 제조 공정과 관련 글자들이 여럿 등장할 정도로 일찍부터 중요하고 다양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먼저, 經(경·날 경)은 원래 경으로 써 간단한 베틀을 그렸는데 이후 (멱,사)을 더했으며, 비단실로 베를 짜듯 經營(경영)하다는 뜻을 그렸다. 또 綢(명주 주), 緞(비단 단) 등은 비단을, 素(흴 소)는 물을 들이지 않은 생명주를, 紡(자을 방)은 비단실을 고치로부터 자아냄을, 織(짤 직)은 비단실로 베를 짜는 것을 말한다.
둘째, 비단에 든 다양한 색깔과 무늬 때문에 이들의 상징이 되었다. 예컨대 紋(무늬 문)은 비단에 아로새긴 무늬(文·문)를, 繡(수 수)는 비단에 정교하게 새겨 넣은 수(肅·숙)를 말하며, 紫(자줏빛 자), 綠(초록빛 록), 紅(붉을 홍), 紺(감색 감) 등은 비단에 넣은 색깔과 관련된 글자들이다.
셋째, 줄과 관련된 여러 뜻을 가진다. 繩(줄 승), 索(동아줄 삭), 縷(실 루), 紀(벼리 기), 綸(낚싯줄 륜) 등은 다양한 용도의 실을 말한다. 斷(A·끊을 단)은 원래 실타래(요) 넷과 칼(刀·도)로 이루어져 칼로 실을 끊음을 말했는데 이후 斤(도끼 근)이 더해졌고, A을 뒤집어 반대의미를 그려낸 것이 繼(이를 계)이다. 絶(끊을 절)도 원래는 앉은 사람(절·절)이 칼(刀)로 실((멱,사))을 끊는 모습을 그렸다.
그런가 하면, 실은 紙(종이 지)에서와 같이 실을 솜(絮·서)처럼 잘게 부숴 종이를 만드는 재료로, 絃(악기 줄 현)에서와 같이 악기의 줄로 쓰기도 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