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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산책]안병찬/현수막만이 표현수단 아니다

입력 | 2005-06-28 03:03:00


얼마 전 학교에서 현수막 철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여러 학내 단체들이 정치 통일 인권 등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담은 현수막을 학교 곳곳에 설치해 놓았는데 비운동권인 총학생회가 나서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문제가 됐던 것.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학내 단체의 의견과, 현수막의 내용이 총학생회의 의견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총학생회의 주장이 충돌했지만 별다른 해결책 없이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학교 인터넷 게시판 등 사이버공간에선 새로운 차원의 토론으로 발전했다. 학생들에게는 캠퍼스를 제대로 감상할 환경권이 있으며 특정 단체의 일방적인 의견을 주입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토론은 활기를 띠었다. 결국 ‘표현의 자유’와 ‘강요받지 않을 권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 셈이다.

뭐가 더 중요하냐를 다투기보다는 서로 상충되지 않도록 하는 묘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작년 여름 중국 베이징대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예상과는 달리 학교 안에는 어떤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탓이 아닐까 짐작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도서관이나 학생회관 앞에 게시판이 있었고 여기에는 실제로 정치 외교 경제 등의 다양한 의견들이 붙어 있었다. 반박 글을 올릴 수도 있어 댓글 형식으로 토론이 활발히 이어졌다. 한 중국 대학생은 신기한 듯 쳐다보는 나에게 “대자보는 학교의 오랜 전통”이라며 “톈안먼 사태 또한 베이징대의 대자보 한 장으로부터 시작했다”고 자랑스럽게 설명해 줬다.

아무 곳에나 어지럽게 붙이는, 또한 특정 의견을 강요하는 듯한 현수막보다는 지정된 공간 안에서 누구나 의견을 표현하고 반론을 게재하도록 하는 방법이 우리가 찾아야 할 해결책은 아닐까. 이젠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고 학생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안병찬 연세대 경영학과 4년·본보 대학생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