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래 심줄같이 끈질긴 악연이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의 흑인 용병 훌리오 슐레타. 그가 국내 팬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LA다저스 최희섭 때문이었다.
슐레타는 시카고 컵스 시절인 2000년 초 최희섭의 팀 동료로 서로 메이저리그 진입 경쟁을 벌였던 라이벌. 당시 컵스에는 매트 스테어즈, 론 쿠머 같은 고만고만한 1루수가 있었지만 두 신인의 성장 가능성에 더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하지만 둘의 경쟁은 결과적으로 슐레타의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슐레타는 최희섭이 플로리다로 트레이드되기 직전인 2003년 6월 먼저 일본으로 떠나긴 했지만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오른손 타자인 슐레타를 중용하는 대신 왼손 최희섭을 오른손 투수 전문으로 기용했다. 이는 최희섭이 지금까지도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플래툰 시스템’의 희생양이 된 시발점이 됐다.
게다가 슐레타는 키 197cm에 113kg의 거구로 체격과 한방에 관한 한 빅리그에서도 전혀 꿀릴 게 없었던 최희섭(196cm 109kg)이 고개를 숙인 거의 유일한 선수였다.
슐레타는 일본에 와선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롯데 마린스 이승엽을 두 번이나 울렸다. 그는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올스타 인기투표 퍼시픽리그 지명타자 부문에서 이승엽에 9000표 가까이 뒤졌지만 26일 마감된 최종 결과에서 919표차로 역전했다.
그는 지난해에도 닷새 전까지 1만 표 가까이 지고 있었지만 막판 뒤집기로 3000여 표를 앞서 이승엽의 올스타 행을 좌절시켰다. 한국으로선 추천 선수로 일본 올스타 무대를 밟은 선동렬(1997년 주니치), 조성민(1998년 요미우리), 구대성(2001년 오릭스)이 있긴 하지만 처음으로 정식 올스타 선수를 탄생시킬 호기를 슐레타 때문에 2년 연속 놓친 것.
한국이 자랑하는 두 왼손 거포의 ‘공공의 적’이 된 슐레타. 하지만 그를 미워만 해선 어쩌랴. 공교롭게도 그의 에이전트는 최희섭이 소속된 이치훈 사단. 프로의 세계는 실력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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