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번영의 상징’인 미국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눈길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이라크전쟁 이후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한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도 나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국가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주범’이라는 분석이 흥미롭다.
반면 러시아는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가이미지 개선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자국 대사들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여 “해외에서 러시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데 외교의 역점을 두라”고 특별지시를 했다.
올가을에는 3000만 달러를 투입한 ‘러시아판 CNN’도 선보인다. 러시아 국내 뉴스와 러시아의 시각으로 본 국제뉴스를 세계에 전하는 위성방송 러시아투데이(RT)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200여 명의 기자로 운영되는 RT는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된다.
크렘린이 이 방송의 창설을 결심한 것은 서방 언론이 러시아의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냉전이 끝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서방 언론은 여전히 러시아의 부정적인 면만 찾아내 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프로파간다 센터’의 나탈리야 만드로바 소장에 따르면 해외에서 바라보는 러시아에 대한 이미지는 몇 가지로 고정돼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 여성은 예쁘다’라든지 ‘러시아에서는 온갖 극단적인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인은 정신세계는 ‘남다르지만’ 촌스럽고 술을 많이 마시고 믿을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지저분한 화장실과 전반적인 인권 경시 등도 러시아의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옛 소련 시절의 낡은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반면 최근 5년 동안 연평균 6.3%의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역동적인 러시아의 모습을 외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푸틴 대통령의 불만이다. 국가이미지란 것이 한번 고정되면 그만큼 바꾸기 힘들다는 얘기다. 러시아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10억∼15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지만 크렘린의 주장처럼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확산이 순전히 서방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일까?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게오르기 사타로프 박사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맞서 싸우기보다 먼저 부정적인 면을 개선하라”고 충고했다. 예컨대 러시아의 부패가 심하다는 외신 보도를 놓고 논쟁을 벌일 것이 아니라 부패 그 자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제는 국가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다. 국가브랜드가 좋아야 수출도 잘되고 투자와 관광객도 들어오는 세상이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노력, 시간을 들여 국가이미지 홍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상품’ 자체가 별 볼일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마케팅 기법을 동원해도 시장에서 팔기 어렵다는 경영학의 상식이 국가이미지 홍보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한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