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이 복원되는 오늘에 다시 읽어 보는 ‘천변풍경’은 한국이 낳은 대작가인 박태원의 높은 산문 정신과 깊은 예술 혼을 재삼 음미해 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천변풍경’을 발표하기 몇 년 전 박태원은 그의 출세작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통해서 식민지의 서울인 경성이라는 폐쇄회로 속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빼어난 문장으로 조각해 냈다. 물론 구보는 박태원의 호이기도 하다. 그 몇 년 후 ‘조광’이라는 잡지에 ‘천변풍경’을 연재하면서 작가가 묘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그 구보 씨의 거처이기도 한, 청계천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상이다.
이 점에서 ‘천변풍경’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함께 박태원의 작가적 자기 인식과 현실 인식을 가장 밀도 있게 표현해 보여 준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박태원은 일찍이 월탄(月灘) 박종화가 ‘순수한 경아리 문학’의 수립이라고 한껏 치켜올린 바 그대로 1930년대 후반경의 서울의 생활 습속과 인정세태를 풍부한 서울말과 화려하고도 유려한 문장미로 재생시켜 낸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천변에서 나와 천변으로 돌아가는 작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냈다면, ‘천변풍경’은 정월에서 시작되어 정월로 끝나는, 청계천변이라는 폐쇄회로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이 폐쇄회로 속의 사람들은 음울하거나 절망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이 사람들에 대한 동정을 표현하는 애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슬픔에 주저앉지 않도록 하는 웃음의 기법으로 암울한 현실을 초극하는 미학적 성취를 이루어냈다. 모두 쉰 개에 달하는 천변 세태에 대한 풍경적인 묘사로 섬세하게 축조되어 나간 이야기를 통해서 박태원이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 박태원을 이상과 더불어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작가로 파악하고자 한 사람들은 일본에서 창안된, 고현학(考現學)이라는 현대고찰 방법의 한국적 적용 양상을 찾아내곤 한다. 또 이 작품을 임화가 말한 바 세태소설의 범주로 이해하고자 한 사람들은 ‘천변풍경’에서 박태원이 모더니즘에서 리얼리즘으로 이행해 나간 계기를 발견하고는 한다. 이것은 모두 중요한 고찰들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최근에 필자는 우리 학과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박태원을 새로 공부해 나가는 과정에서 박태원이 처음부터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여러 고전과 이야기에 대한 풍부한 교양적 지식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박태원은 이처럼 동서양을 아우르는 풍부한 텍스트 경험에 기초하여 아일랜드 출신의 대작가인 제임스 조이스가 이루어낸 것과 같은 예술적 성취에 도전해 나갔으며, 이것은 역설적으로 서구적이거나 일본적인 모더니즘의 모방에 머물지 않는 예술적 도전을 의미했다.
‘천변풍경’은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제작이다. 여기서 그는 식민지적 근대의 정치문화적인 여러 양상을 섬세하게 포착해 나가면서도 이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특유의 ‘위장된 명랑성’으로 이러한 현실을 견뎌내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의 세계를 창출해 내고자 했다. 이 독특한 ‘전략’이 여기 등장하는 많은 인물을 관통하고 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 국어국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