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보면 우리 경제는 잘돼 가고 있다. 그는 “서민생활이 예전처럼 흥청망청은 아니지만 안정을 찾고 있고, 서민 집값도 안정됐다. 경기(景氣)는 10월쯤 회복된다. 무리한 성장은 소득 격차와 물가 불안만 낳는다”고 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하위 20%는 지난해 실질소득이 줄었다. 전국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0%는 올해 1분기 가계수지가 적자였다. 영세자영업자의 30%는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4인 가구 기준 113만 원)에 못 미친다. 자영업자의 20%는 연 매출액 대비 부채 비율이 평균 174%다. 이 총리는 이런 숫자를 보고받지 못하는지 ‘서민생활이 안정을 찾고 있다’고 보았다. 판단이 이런데, 서민의 고통을 함께 느낄 때나 세울 수 있는 대책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 총리는 “집값이 서울 강남만 오르고 마포와 서대문 등 나머지 지역은 오르지 않았다”며 부동산정책이 성공한 듯이 말했다. 정부는 ‘강남 집값 상승이 분배 양극화를 부른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2년여에 걸쳐 ‘강남 때려잡기’ 정책을 폈다. 집값 양극화가 더 심해진 것이 결과다. 경기 성남시 분당 일대와 고양시 일산 일부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도 가격오름세가 가파르다. 이 부총리는 분배 양극화를 부추긴 정책을 성공적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그는 또 “개발계획으로 땅값은 오르지만 거래가 별로 없다”고 했다. 땅 소유자가 가격의 추가 상승을 예상해 팔지 않는 것을 ‘시장의 안정’으로 보는 모양이다. 땅 투기 바람은 공기업 이전 발표 후 더 거세게 불고 있다.
정부는 8월에 부동산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2주 전에 밝혔다. 그동안의 정책을 성공이라고 보면서 내놓을 대책이 집값 양극화와 전국의 투기장화에 또 한번 기름을 붓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총리는 또 “투자가 건전해지고 있다”며 “부작용을 낳는 경기부양책은 안 쓴다”고 했다. 몇 년째 성장성 있고 유망한 곳에 대한 투자가 부진해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추락하고 있음을 경제전문가들과 시장은 알고 있다. 정부는 수십조 원의 재정을 쏟아 넣고, 수백조 원 규모의 각종 국토개발사업을 벌이는 등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을 써 왔다. 그럼에도 외국기관들은 올해 성장률을 3%대로 낮춰 잡고 있다. 대선 때 노 후보가 연 7%로 공약한 성장이 3%대로 떨어지는데 이 총리는 오히려 ‘무리한 성장’의 부작용을 걱정한다.
정책의 실패보다 더 나쁜 것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정직한 대안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