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이스트사이드파크에서 개와 함께 주말을 보내고 있는 뉴요커들. 이들의 생활 속에서 개는 가족이나 친구 같다.
《뉴욕 파리 도쿄는 세계 유행의 첨단을 걷는 도시. 이 세 도시의 위크엔드 라이프 스타일은 어떨까. 최영은 통신원(뉴욕), 김현진 사외기자(파리), 박원재 특파원(도쿄)이 각각 3주에 한 회씩 이 세 도시에 사는 이들의 생활 패션 음식 등에 대한 트렌드와 스타일을 전한다.》
한동안 뉴요커들을 지루하게 했던 우중충한 날들이 지나고 드디어 여름 햇살이 비치는 주말 오후. 유니언 스퀘어 파크 주변의 길 한쪽에는 팬시 스타일의 개밥그릇과 물그릇이 즐비해 있다. 그것은 개들을 손님처럼 대접하기 위한 것으로 뉴요커의 각별한 ‘개사랑’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애완견을 기르지만, 뉴요커의 애완견 사랑은 더욱 특별하다. 뉴요커들은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애완견을 소유할 만한 여유가 많지 않은데도 어렵사리 개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뉴요커들은 ‘도그워커’(dogwalker·주인을 대신해 개를 산책시켜주는 이들)를 고용하는 등으로 애완견을 키우고 있다. 특히 뉴요커들의 까다로운 입맛에 맞추려면 도그워커도 만만치 않은 전문성과 경력으로 포장된 이력서가 필요하다.
개를 데리고 동네를 산책하는 뉴욕의 ‘도그워커’.
점심 시간 맨해튼의 보도 위로 도그워커들이 서너 마리에서 많게는 열 마리까지 각양각색의 개들을 신나게 산책시키는 모습은 볼 만하다. 물론 ‘패리스 힐튼’처럼 손가방에 들어갈만큼 작은 애완견과 24시간 함께 지내는 뉴요커들도 있다. 필자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는 ‘엘리자베스’라는 치와와가 루이뷔통 가방 안에서 얼굴을 내민 채 주인과 출퇴근을 하기도 한다. 이런 개들은 애견 미용 센터에서 페디큐어와 마사지를 받으며, 100% 캐시미어 스웨터를 입고 진주 장식이 달린 개목걸이를 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이들은 PETCO(미국의 애견용품점 체인)에서 페디큐어를, KMART에서 2달러짜리 면 티셔츠를 사 입힌 뒤 집에서 직접 마사지를 해주기도 한다.
뉴욕의 애견 서비스는 갈수록 다양해지는 추세다. 애견 손질이나 조련, 워킹을 비롯해 최근에는 많은 운동이 필요한 중견(中犬) 이상의 큰 개들을 위해 ‘달리기를 시키는 서비스’가 성행이고 주인들이 직접 개를 달릴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
또 몸을 다쳐 회복이 필요하거나 비만증에 걸린 개들, 나이가 들어 움직이지 못하는 개들을 위한 피트니스 프로그램도 있다. 요크셔테리어와 마르치스를 키우는 월스트리트의 젊은 사장 마이클 씨는 애견 페소가 의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자 뉴욕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애견 클리닉의 수중치료 프로그램에 보내기도 했다.
호텔에서는 개와 함께 입실하는 손님을 위해 애견 서비스를 제공하며, 애견 트릿(군것질거리) 등이 준비된 객실을 구비하거나 애견용품을 갖춘 상점을 입점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비용이나 시간 등 여러 이유로 도그워크도 고용할 수 없고, 24시간 애견과의 생활도 어려운 애견가들은 어떻게 할까. 생뚱맞겠지만 주말 오후 공원으로 개 구경에 나선다.
맨해튼 내 웬만한 공원에는 ‘도그 플레이그라운드’가 있다. 주말 오후 이곳에는 주인과 함께 놀러온 각양각색의 개들이 모여든다. 뉴요커들이 세계 각국 출신이어서 이들이 키우는 개의 종류도 다양해 마치 ‘개 전시장’을 보는 듯하다. 어지간한 종류의 개들을 만날 수 있고 만져볼 수도 있다.
뉴요커들은 뉴욕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운 도시라고 말한다. 미국의 다른 곳과 달리, 뉴욕 길거리에서는 ‘하이(Hi)’라는 한마디로 낯선 사람과 대화를 트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
이런 뉴욕에서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를 트는 방법 중 하나가 산책 중인 개와 주인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1주일에 3, 4일은 센트럴 파크로 개와 함께 산책하는 크리스토퍼 씨는 “개만 한 ‘칙 매그닛’(chick magnet·아가씨 유혹하기)이 없다”고 말한다. 남자가 낯선 여자에게 말을 걸기 쉽지 않은데 개를 데리고 나가면 여자들이 다가와 개 이름과 종자 등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최근 뉴욕에 있는 ‘퍼피러브 매치 닷컴’는 이런 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전문 도그워커와 트레이너인 안드리아 파슬러 씨가 창안한 이곳은 애견인과 애견이 모두 자신의 반쪽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개의 건강과 쇼핑에 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뉴요커들의 견사랑에 비해 맨해튼 시내에서 애완견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마 1000달러(약 100만 원)를 넘는 애완견의 가격 때문일 것이고, 많은 이들이 개 보호시설인 셸터에서 입양을 선호하는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뉴욕 시는 개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이나 공공 건물에서 개의 입장을 불허하며 거주용 빌딩들은 입주자들이 애완 동물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맨해튼에서 아파트 찾기가 ‘하늘에서 별따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애완견 키우기가 허가되는 곳만 찾아야 하는 개주인들의 사랑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침대와 책상 하나 놓으면 가득 차는 조그만 스튜디오(원룸)에서 커다란 개를 키우는 뉴요커들은 미국 내 다른 지역 사람들의 농담거리가 되곤 한다. 그러나 뉴요커들이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눈물겨운 견사랑은 이해할 만하다.
뉴욕=최영은 통신원 blurch3@hotmail.com
○ 최영은 씨는
1976년생으로 연세대 의류환경학과와 뉴욕 파슨스 스쿨 오브 디자인(패션 디자인 전공)을 졸업했다. 뉴욕에서 캐서린 말란드리노, DKNY, 갭 등 유명 브랜드의 인턴 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마가초니 어패럴 그룹의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