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는 골이 잘 터지지 않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전에 우리나라가 강팀에 간혹 5-0으로 져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지만 5골 이상 나는 경기를 거의 보지 못했다. 축구에서 득점을 하려면 팀원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이뤄 패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찬스를 만들어야 하고 마지막 순간에 골 결정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축구에서의 골은 한팀 선수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낸 초절정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기종목 중 축구는 골이 가장 드물게 나지만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만약 축구 골대의 크기를 늘리고 오프사이드를 없애는 등 규칙을 완화해 농구나 핸드볼처럼 골이 마구 터진다면 축구팬이 많아질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축구에서의 골은 상대방에 의해 패스가 끊기는 안타까움, 찬스다 싶으면 오프사이드가 되는 수많은 좌절감 속에 이뤄낸 것이기에 뛰는 선수나 관전하는 사람에게 큰 희열을 준다. 한마디로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득점이 어렵다는 것이다.
축구에 빗대어 수학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그 난해함에 있다고 하면 지나친 궤변일까. 높은 수준의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축구에서 상대 방어벽에 걸리듯 수학공부를 하면서 수없이 좌절을 경험하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수학문제가 풀릴 때의 성취감은 축구에서 골을 넣을 때에 비할 만하다.
예로부터 수학은 인간의 정신 능력을 기르는 도야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졌고, 고대 그리스 시대와 중세에는 ‘7자유학과’로 중요시되었다. 특히 플라톤은 ‘국가’에서 ‘기하학은 아래로 향하는 우리의 영혼을 위로 향하도록 철학적인 마음가짐을 만들고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가는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수학은 우리의 생각을 정돈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며 사고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 사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대학 교양과목에 대해 논의할 기회가 있었다. 교양과목이 시대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는 고답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대학생의 현실적인 요구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그에 반해 교양 과목이 시류를 반영하여 인기를 끌 만한 방향으로 변신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예를 들어 ‘요가’나 ‘설득술’은 굳이 대학이 아니더라도 학생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배운다. 그렇게 보면 지적 능력이 왕성한 시기에 배워야 할 과목은 대학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면 자발적으로는 평생 접할 기회가 없는 이론적, 사변적, 추상적 성격일 필요가 있다.
영국의 교육학자인 피터스와 허스트는 실용적인 가치가 낮아 보이는 교과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지식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설명했다. 수학을 비롯한 고전적인 교과들은 인간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누적시켜온 경험들을 각각 개념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또 이런 체계화는 특정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으로 발전시키고 엄밀하게 정련시켜 온 공적(公的)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류의 정신적인 공적 전통인 지식의 형식에 입문할 필요가 있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골치 아픈 전공과목을 최소한으로 듣고 쉽고 편한 교양과목, 금방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다루는 과목으로 수강생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적어도 대학 시절에는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그것이 직접 어디에 어떻게 소용되는지에 의해서 판정하는 실제적 유용성에 매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