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게임에만 빠져 말수가 적어지고 욕설과 신경질이 느는데, 바빠서 일일이 감시할 수도 없고 어떡하죠?”
여름방학을 앞두고 게임 때문에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비상이다.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배모 씨는 “아이가 혹시 게임을 못해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돼 내버려 뒀는데 고학년이 될수록 너무 게임에 집착하고 성적도 떨어지고 있다”고 걱정했다.
자녀의 게임중독을 우려해 게임중독클리닉센터에 상담을 신청한 한 학부모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아 컴퓨터에 관한 모든 것을 사다 주었더니 게임만 하는 아이가 됐다”면서 “집에서 PC를 치우고 용돈을 줄었더니 말수가 줄어들고 누나에게 욕설과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소연 했다.
그는 “따끔하게 혼을 내려고 매를 들면 심지어 저한테도 욕하며 대든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런 가운데 GP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김동민 일병이 평소 PC게임에 몰두한 ‘게임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게임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 게임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
초등학교 5학년인 지언(10)이는 PC방에서 매일 2시간씩 어린이용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를 즐긴다. 맞벌이에 매일 늦게 들어오는 엄마는 지언이가 학원가기 전에 게임을 하라며 용돈을 준다.
통통 튀어 다니는 컴퓨터 화면 속 캐릭터를 쫓아다니면 2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지언이는 “30분 정도 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1시간이 지났어요. 우리 반에는 게임으로 밤을 새는 ‘고수’도 많아요. 그 친구들처럼 게임을 잘하고 싶어요.”라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답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태은(11)이도 하루 2~3간정도 게임을 즐긴다. 엄마한테 자주 혼이 나지만 그렇다고 게임시간을 줄일 생각은 없다.
태은이는 “집에서도 할 수 있는데 왜 게임방에 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할 수 있고, 부모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고 대답했다.
▽일상화 된 게임 습관, ‘게임중독’으로 이어질 수도▽
서울·인천지역 초등학교에서 ‘게임시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학생 70%가 하루에 1~2시간정도 게임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0%는 2~3 시간, 게임 중독이 의심되는 4시간 이상도 5~7%에 이르렀다.
설문조사에서 어린이의 80% 가량은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충격적인 응답을 했다. 올해 수도권에서만 운전게임 ‘카트라이더’를 흉내 낸 초등학생들이 주인 몰래 승용차를 훔쳐 질주하다 다중추돌사고를 낸 사건이 3건이나 발생해 이런 조사를 뒷받침했다.
학생들은 경찰조사에서 “게임처럼 진짜 운전을 해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기자가 28일 PC방에서 만난 어린이들도 “운전하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 기어를 바꿔 본적이 있다”, “꿈에서도 운전한다”, “게임 소리가 환청으로 들린다” 고 말했다.
초등교사 고혜진(28) 씨는 “맞벌이로 바쁘고 인터넷게임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부모들은 게임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판단하기 어려워 아이들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 게임중독은 사회적 일탈 원인되기도▽
게임중독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과 게임의 세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자의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 가중될수록 현실을 가상세계로 착각해 대형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가 된 김 일병이 즐겨했다는 슈팅게임 ‘doom’은 건물과 산에 사이에 숨어있는 악당들을 주인공이 총과 수류탄으로 공격해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게임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8일에는 20대인 황모 씨가 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죽였다며 엉뚱한 ‘게이머’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 난데없이 흉기에 찔린 피해자가 놀라 PC방을 빠져나왔지만 황 씨는 계속 쫓아가 몇 차례 더 찔렀다. 황씨는 평균 6시간씩 게임을 했고 일이 없을 때에는 하루 종일 게임에 매달렸던 중독자였다.
지난 4일에는 ‘리니지 도사’로 불리던 이모 씨가 인터넷뱅킹을 해킹해 타인의 예금 5000만원을 빼낸 일도 발생했다. 이씨는 인출한 5000만원 가운데 2000만원을 온라인게임의 아이템 구입에 썼다.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컴퓨터 사용시간을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보다는 자녀와 협의해 게임시간을 조정하고 부모도 컴퓨터 게임을 배워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권장했다.
게임중독치료센타 이영순 대표는 “무엇보다 자녀와의 대화가 최고의 게임중독 예방책”이라며 “아이들도 공부를 하지 않고 게임만 오래하면 나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녀가 게임중독으로 가기 전에 좀더 현실적인 취미를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만약 생활부적응이나 갈등이 계속되면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와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상담을 받도록 하라고 권했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구민회 동아닷컴기자 dan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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