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음 타는 내 아이. 앞으로 사회에 잘 적응할까.’
이런 걱정을 하는 부모가 많다. 아이가 미적거릴 때마다 속이 탄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범인은 내성적”이란 말도 은근히 신경 쓰인다.
한국은 특히 수줍음이 많은 나라다. 예로부터 다른 사람과 조직을 우선 생각하도록 교육받았고 과묵한 사람을 대접했던 풍토 탓이다. 그래서 수줍음 교정은 참 어렵다.
그러나 수줍음을 탄다고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도 어색하다. 엄마의 고민만 깊어 간다.
○ 모전자전… “수줍음 유전자 있다”
지난달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수줍음이 ‘정크(쓰레기) DNA’와 관련이 있다는 동물실험 결과가 실렸다.
미국 에모리대 연구팀은 초원들쥐를 정크 DNA가 짧은 그룹과 긴 그룹으로 나눴다. 이어 같은 그룹끼리 교배를 시켜 새끼를 낳게 했고 이 새끼들이 다 자란 뒤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정크 DNA가 긴 수컷은 낯선 쥐에게 재빨리 다가가 짝짓기를 했다. 반면 정크 DNA가 짧은 수컷은 낯선 쥐와 잘 어울리지 못했다. 뇌의 변화도 보였다. 정크 DNA가 긴 쥐일수록 사회행동과 새끼양육에 관여하는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뇌에 훨씬 많았다.
그동안 정크 DNA는 아무런 유전정보가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이름도 ‘정크’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 성격 교정과 정신장애 치료에 중요한 자원으로 떠올랐다.
○ 부모가 수줍어하면 아이도 수줍어한다
1990년대 초 5세 어린이 8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많은 아이들이 3∼3.5세에 수줍음을 처음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번째 아이냐 하는 것은 수줍은 성격과 상관이 없었다.
수줍어 하는 아이일수록 대인적응능력이나 또래집단과의 어울림 능력도 떨어진다. 1990년대 중반 435명의 초등 6학년생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 결과다.
2000년 초등 5, 6학년생 28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연구에서는 부모가 온정적일수록 아이들이 수줍음을 덜 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든 조사에서 공통적이며 가장 흥미로운 점이 있다.
부모가 수줍어하는 성격이면 아이도 수줍어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 것. 특히 엄마의 사회성(사교성)이 떨어지면 아이의 사회성도 떨어졌다. 또 아빠의 통제가 강할수록 수줍어 하는 아이가 많았다. 아이의 수줍음을 고치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 수줍음, 치료해야 하나
일단 관찰을 하자. 아이를 혼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자신만의 ‘동굴’로 꼭꼭 숨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두려워하는 점을 파악하고 준비를 충분히 시켜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서 발표가 있으면 집에서 예행연습을 하는 것도 좋다. 미흡하더라도 칭찬과 격려를 하도록 한다.
그러나 수줍음의 정도가 심하면 정신상담을 고려하는 게 좋다. 가령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거나 심하게 떼를 쓰면서 우는 경우, 혼자서만 놀려고 하고 심하게 불안해 할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병원에서 3∼6개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대부분 좋아진다.
수줍음이 더 심해 병적인 단계라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성인으로 이어져 ‘사회공포증’이나 ‘회피성 인격장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공포증은 말 그대로 사회생활을 두려워해 항상 긴장상태이며 불안감을 느낀다. 회피성 인격장애는 수줍음의 극단으로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생기지만 스스로 정신과를 찾지도 않는다. 그것마저 두렵기 때문이다.
(도움말=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신경정신과 정유숙 교수, 소아과 정승원 교수,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김붕년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수줍음 교정을 위한 부모행동수칙▼
① 스킨십을 강화하라=엄마의 온정은 수줍음 교정의 특효약. 관심을 더 보여 줘라.
② 소그룹 모임을 가져라=수줍어 하는 아이는 단짝친구를 많이 찾는다. 친한 아이들과 자주 놀게 하라.
③ 미술교육을 하라=칠하기, 만들기 등은 즉각 성취감을 맛볼 수 있어 자신감 향상에 좋다.
④ 그림책을 많이 보게 하라=동물과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책이 특히 좋다.
⑤ 기대치를 낮춰라=당장 성과를 보려고 조급해 하면 아이를 더욱 위축시킨다. 목표를 조금 낮춰라.
⑥ 운동을 시켜라=소극적이면 놀이에 잘 끼지 못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부터 단계적으로 운동 종목을 늘리도록 한다.
⑦ 소리 지르지 마라=‘부끄러운 것은 자연스럽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 준다. “바보같이” “왜 창피해하냐”는 말로 윽박지르면 악화될 뿐이다.
▼사회성 길러주는 6가지 요령▼
꽃처럼 수줍어하는 아이들에겐 사회성 강화 프로그램을 응용할 수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사회성 강화 프로그램은 많다. 그러나 수줍음 교정용으로 개발된 것은 별로 없다.
계명대 교육학과 정현희 교수와 한국청소년상담원 이현숙 상담원이 2004년 개발한 프로그램을 참고하면 어떨까. 이 프로그램은 수줍음 교정을 위해 외국에서 개발한 것을 국내 실정에 맞게 변형한 것.
정 교수팀은 당시 ‘특히’ 수줍어하는 대구지역 초등학교 5, 6학년생을 골라 이 프로그램을 적용했다. 매주 2회씩 8회에 걸쳐 각각 60분간 훈련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아이들의 사회성이 강화되고 우울 또는 불안을 느끼는 경향이 줄었다. 또 자신을 더 많이 존중하게 됐다.
이 프로그램을 가정에서 응용해 보자.
▽칭찬하기=“얼굴이 예쁘다” “옷이 잘 어울려” 등과 같은 칭찬을 해 준다. 칭찬받을 때의 기분을 얘기하게 한다. 이어 같은 요령으로 엄마를 칭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자신의 장점 10가지를 적도록 시킨다.
▽감정 이해하기=‘공감’하는 법을 익히기 위한 훈련이다. 여러 표정의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감정을 추측하게 한다. 또 친구가 1등을 했을 때, 놀이공원 약속이 취소됐을 때 등 가상의 상황을 제시하고 어떻게 격려 또는 위로를 할지 말하게 한다.
▽도움 청하기=도움이 필요한 상황과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를 묻는다. 미술시간 준비물을 잊고 와서 친구에게 빌려야 할 때, 친구가 자꾸 놀릴 때 등 상황을 설정해 시연해 본다.
▽부탁 거절하기=집에 돌아가야 하는데 친구가 더 놀자고 할 때,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훔치자고 친구가 말할 때 등 가상의 상황을 설정하고 정중하고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하도록 시킨다. 그 이유도 묻는다.
▽의사결정하기=여러 개의 선물 그림을 보여 주고 하나만 선택하게 한 뒤 그 이유를 발표하도록 시킨다. 나머지를 거절한 이유도 묻도록 한다. 또 여러 개의 학교 동아리를 제시한 뒤 하나를 선택하고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다.
▽갈등 벗어나기=동화를 이용한다. 콩쥐-팥쥐, 백설공주-마녀가 왜 갈등하는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현재 자신이 어떤 갈등을 겪고 있는지 말하게 한다. 자신의 고민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수줍음 극복에 큰 도움이 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