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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으로” 美 대법관 후임 놓고 공화-민주 강경대립

입력 | 2005-07-04 03:14:00


1일 사임한 미국 대법관의 후임 인선을 둘러싸고 워싱턴 정치권에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낙태 및 동성애자 결혼 허용 여부 등 갈등 재생산형 현안을 놓고 끝없이 대립해 온 공화 민주 양당은 물론 외곽 지원단체까지 나서 제각각 입맛에 맞는 대법관 인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깜짝 사임=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75·사진) 대법관은 1981년에 임명된 종신직 대법관 사임 의사를 1일 전격 발표했다. 지난해 말 전립샘암으로 수술을 받은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사임 발표를 기다리던 워싱턴 정치권이 의표를 찔린 셈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즉각 “미국이 자랑스러워 할 인사를 고르겠다”고 말했다. 백악관은 2일 “인선 결과는 G8(선진 7개국+러시아) 정상회의를 마치는 9일 이후에나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오코너 대법관의 사임은 5 대 4로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우세한 구도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아온 그의 독특한 입지 때문에 앞으로 미국 사회의 향배를 가늠할 주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백악관 참모들은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수 색채가 강한 후보자 6, 7명의 명단을 넌지시 흘려 왔다. 이 가운데 1명이 인준된다면 향후 보수적 판례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감도는 전운=공화 민주당은 사임 발표 직후 기존의 강경 입장을 되풀이했다. 빌 프리스트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사임 발표 18분 만에 원고지 50장 안팎의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미국의 가치를 반영할 보수적 판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민주당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도 “오코너 대법관처럼 중도적인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으면 무한투쟁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는 1998년 로버트 보크 지명자의 인준 부결을 주도한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의사당 안에서의 양당간 다툼으로만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공화당 지원단체는 남부 및 중서부지역에서 당선된 민주당 상원의원 12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낙선운동을 예고했다. 정치단체인 ‘미국을 위한 전진’은 1800만 달러(약 180억 원)를 보수성향의 대법관 추대를 위한 TV 광고에 쓰겠다고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민주당 외곽단체인 ‘정의를 위한 연대’는 노조, 여성단체 등의 결집을 촉구하는 한편 “다수가 동의할 후보를 지명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중도인사 기용을 주문했다.

▼최초 女대법관… 레이건이 발탁▼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애리조나 주에서 주 상원의 첫 여성 여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주 항소법원 판사로도 활동했다. 스탠퍼드대 법대를 3등으로 졸업했지만, 1950년대의 여성 차별적 분위기 때문에 법률회사 한 곳으로부터 ‘비서직’ 제의를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고향인 텍사스 농장에서 승마를 즐긴 것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비교적 무명 판사였던 그를 1981년 연방대법관으로 발탁했다. 1988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지만 수술 10일 만에 업무에 복귀하는 강단을 보였다.

연방대법원이 5 대 4로 박빙의 표결을 내릴 때마다 캐스팅보트를 쥐는 일이 많았다. 2000년 대통령 선거 재검표 논란 때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러나 공립대학의 소수인종 우대제도 존속, 학교 졸업식 때 기도 반대 등 비교적 진보적인 사안에 동조하는 판결을 내렸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