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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구름 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입력 | 2005-07-05 03:05:00


이해찬 국무총리의 골프가 또 시비를 불렀다. 식목일 산불로 낙산사가 재로 변할 때 쳤다가 “앞으로 근신하겠다”고 사과했는데, 이번에는 남부지방에 집중호우 경보가 뜨고 피해도 생긴 주말이었다.

마침 열린우리당은 20% 밑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올리겠다며 ‘민생 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거는 중이었다. 총리 측은 “쉬는 날엔 쉬라는 메시지를 공무원들에게 주려 했다”, “취임 1주년 기념이었다”, “제주에서도 수해대책 지시를 내릴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 총리가 ‘민생 밖으로’ 나가 있어도 휴대전화가 통하니 괜찮다는 얘기다.

통신 강국이니 총리가 골프 친다고 연락이 끊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 대처가 느슨해질 우려는 있다. 전화가 된다고 총리가 재택(在宅)근무를 하겠다면 실소(失笑)할 일 아닌가. 노는 재미에 빠지다 보면 일에 대한 감(感)도 둔해지는 법이다.

총리 측은 “그럼 언제 쉬느냐”고 했다. 그런 말투라면 “총리 안 하면 푹 쉴 수 있다”고 대꾸할 수도 있다. 더구나 주5일 근무제가 본격 실시됐다지만 주마다 이틀 쉬는 근로자는 여전히 소수다.

평소 남을 질타하는 모습이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총리다. 그런 총리라면 자신의 ‘합리’와 달라도 세금 내는 국민의 걱정도 헤아려 줘야 공평하지 않나.

‘많은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정부, 많은 서민이 오늘보다 내일이 낫겠지 하는 희망을 갖도록 해 주는 정부’가 잘하는 정부다. 그런 정부라야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독선과 오기로 내전(內戰) 치르듯이 국민을 대해서는 그런 정부에 가까워질 수 없다.

이 총리는 지난 1년간 ‘쉴 새 없이 일해서’ 국민에게 어떤 안심과 희망을 선사했는지, 매주 이틀 쉬면서 틈틈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는 며칠 전에도 경제와 민생을 장밋빛으로 낙관했는데, 차라리 침묵했더라면 국민 반응이 덜 나빴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 총리가 민생의 실상을 정말 모르는지, 알고도 좋다고만 하는지 헷갈린다. 산하(山河)가 홍수에 떠내려가도 구름 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국민 속에는 정부 때문에 나라가 바람 잘 날 없다고 분노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도 정부, 특히 대통령과 총리는 난국의 책임을 신문 탓, 야당 탓, 가진 자 탓, 과거정부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대통령은 제도 탓까지 하고 나섰다. 며칠 전에 그는 연정(聯政)의 필요성을 언급했고, 이를 받아 청와대는 어제 “내각제적으로 운영되는 정당 구조와 대통령 중심제인 권력 구조(의 불일치)에 문제가 있다”고 들고 나왔다. 더 큰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겠지만, 우선은 실정(失政)으로 국정 장악력이 떨어진 책임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처사다.

부동산정책이 안 먹혀 양극화가 완화되기는커녕 더 심해진 데 대해서도 대통령은 사회와 국민의식을 탓했다. 그러자 총리와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집값이 떨어져 상대적 박탈감을 더 느끼는 지역민들에게 “그것이 안정이고 정책의 효과”라고 가르치려 했다.

“부동산정책의 주요 목표는 빈부격차 해소”라고 강조해 온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빈말로라도 자신의 책임을 말한 적이 없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은 현 정부 임기 중의 정책이 다음 정부에서 바뀔까 봐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제도를 내놓겠다”고 거든다. 한 치 앞도 못 봐 ‘당장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차기 정부의 일을 걱정하니 우습다. 이런 것이 독선이다.

국민의 7할, 8할이 잘못한다고 하면 건성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무엇이 정부의 문제인지 도대체 모르겠다면, 왕조 때 임금이 변장하고 민심을 살폈듯이 대통령이 시민으로 모습을 바꿔 택시도 타 보고, 음식점도 가 보고, 시장도 돌아 보기 바란다. 그 정도의 용기는 필요하다.

대통령은 7일 국정 전반에 대한 구상을 밝힐 계획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급한 것은 낮은 곳으로 내려와 국민의 눈높이에서 민생을 다시 보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일이다. 코드 맞추기에 이골이 난 청와대 측근과 각료들의 보고(報告)만 들어서는 ‘언제나 쾌청한’ 구름 위의 하늘밖에 안 보일지 모른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