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중에서도 어설프고 서툰 쇼를 ‘생쇼’라고 한다. 한나라당의 원내총무를 지낸 이가,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라는 오발탄을 쏜 당 지도부를 향해 한 말이다. 애당초 가결될 수 없는 안건이라면, 정치공세로 끌고 갈 것이지 왜 방아쇠를 당겨 자책골을 쏘았느냐는 뜻이다.
‘풍선껌’ 공세라는 말도 나온다. 지지율 10∼20%대의 정권 심층부에서 행담도 및 러시아 유전 의혹을 빗대 하는 소리이기에 역겹긴 하다. 그래도 풍선껌 소리는 귀에 남는다.
행담도와 유전 의혹, 예전의 옷 로비 소동은 비리 액수의 문제라기보다 엄격해진 도덕적 잣대의 문제다. 한나라당의 재·보선 사조직 동원 문제도 비슷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 정당은 본질이 아닌 것, 생산적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아니 실체가 풍선일수록 더 부풀리고 물고 늘어지는 체질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대통령이 연정(聯政)을 말한 데 이어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개헌의 필요성을 입에 담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헌은 되지도 않을 ‘생쇼’거나 아니면 본질이 아닌 것을 헌법 탓으로 돌리는 풍선껌 정치 같은 것이다. 처음부터 개헌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첫째, 개헌할 능력과 여유가 없다. 정부 여당의 실력은 이제 웬만큼 검증됐다. 권력구조라는 집짓기 뼈대 손질보다는, 민생정치의 실적을 다져 살림이나 거덜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래서 바통 터치나 잘해 주기를 기대할 수준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당 구조 역시 지도부의 리더십과 대권후보들의 동상이몽(同床異夢)을 고려해 볼 때 여유가 없다. 따라서 여야 합의로 국회 개헌선 3분의 2를 넘어서는 개헌은 꿈에 불과하다.
둘째, 개헌해 봤자 결국 사람과 운용의 문제로 귀착되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에선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 8년쯤의 여유로, 지금의 5년짜리 아마추어 한탕정권의 결함을 메우자는 발상이다. 그러나 결국은 마찬가지다. 첫 4년간 다음 선거운동에 매진하고, 나머지 4년은 레임덕에 들어간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쏠림현상이다. 인적 자원이 ‘8년 기생(寄生)’을 목표로 달라붙게 되면 과거 독재시절의 인재편중 곡학아세로 회귀하고 말 것이다. 한국인의 조직 내 행동패턴은 정직(honesty)보다 충성(loyalty)이 우선한다. 한국에서 60년을 산 원한광(호러스 언더우드) 씨의 견해다. 세브란스를 세운 언더우드 가문의 4세인 그의 관찰은, 한국과 서양을 두루 잘 아는 이의 통찰이다. 국회에서 생쇼 또는 풍선껌 쟁투가 되풀이되는 것은 의원들의 지능 문제가 아니라, 정직 대신 충성(당 조직)을 택하는 유전자 때문인 것이다.
셋째, 정권과 진보 측, 그리고 ‘지역당’들은 내각제를 주장하지만 일상정치조차 타협과 관용이 안 되는 판에 내각제로 가면 ‘내각 무(無)책임제’로 흐를 공산이 크다. 흑이냐 백이냐 택일을 강요하고 회색의 현실성을 야합으로 몰아붙이는 비민주와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 내각제는 불가능하다. 더욱이 왕조와 대통령제를 통해 의회는 비생산과 불신의 표적처럼 비쳐져 왔고 대통령 만능의 환상을 키워 왔다.
넷째, 개헌은 권력구조만 바꾸는 게 아니다. 1948년 7월에 만들고 1987년까지 손질해 왔다고 하나 시대 변화에 따라 권리조항이나 헌법 전문에 대한 견해도 갈리고 있다. 남북화해와 통일을 반영하는 문구를 넣는 문제만으로도 사생결단의 국론 분열로 치달을 수 있다. 그걸 빼고 권력구조만 바꾸자고 할 수도 없으니, 자칫 앓느니 죽자는 소리가 될 것이다.
개헌 주장은 또 다른 한탕주의요 백해무익이다. 일 잘 못하고, 법과 제도 탓으로 돌리는 변명은 이제 집어치우라. 생쇼, 풍선껌에 질리고 뎄다.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