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학교 학생을 위한 센터를 운영하는 어느 교수님이 인도 철학 강의를 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오셨다. 청소년에게 인도 철학이 무슨 흥미가 있겠느냐고 했더니, 학생의 인생의 지평이 넓어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인도 철학을 강단에서만 이루어지는 고담준론으로만 여기고, 살아있는 삶의 지침이 될 수 있음을 필자 자신이 간과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인도 철학은 고원한 진리를 추구하고 인생과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는 철학적 토론과 깊은 명상을 실천했던 인도의 무수한 현자의 가르침의 총체이다. 우파니샤드는 이런 인도 철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책이다.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눈에 보이는 다양한 경험 세계의 근저에 있는 보이지 않는 실재를 탐구하려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시작했다. 그것을 앎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알게 되는 우주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실재 자체를 아는 지식을 추구한 것이다. 우파니샤드란 ‘가까이 앉는다’는 뜻으로, 우주와 인생의 비밀을 아는 이 신비한 지식은 스승과 제자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조심스럽게 전수되기 때문이다.
카타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젊은 주인공 나치케타는 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가, 그리고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문제를 찾아 죽음의 신을 찾아간다. 이에 죽음의 신은 소리도 없고, 촉감도 없으며, 형태, 맛, 냄새, 시작도 없고 끝도 없고 초월적인 그것을 아트만이라고 하고, 이 아트만을 알게 되면 그 순간 죽음의 어귀에서 풀려난다고 대답한다. 아트만이란 자아라는 뜻이다. 자신의 참모습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태어나서 늙고 죽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해탈이며 죽음을 벗어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다.
아트만은 나아가 세계의 근원이며 진리의 참모습인 브라만의 개별적인 표현이다. 찬도기야 우파니샤드에서 웃달라카는 그의 아들 슈베타케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들아, 한줌의 흙덩이를 알면 그 흙으로 만든 모든 것을 안다. 그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중 흙만이 참 존재이다.” 자기가 곧 브라만이라는 진리가 우파니샤드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지식이다. 이것을 깨닫는 사람은 욕망과 두려움에서 해방되고 업에서 자유로워져 환생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 훈련이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마음의 고삐를 제어하고, 감각기관의 말을 잘 몰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여 다시는 윤회의 세계에 이끌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우파니샤드에서는 요가를 행하는 장소, 자세, 호흡 등의 문제도 다루고 있다. 명상 수행의 전통은 세계의 여타 종교에서도 발견되는 바이지만, 명상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종교의 목표를 참 자아를 깨닫는 것에 두는 것은 인도에서 발현된 여러 종교가 공유하는 특별한 점이다.
요가와 명상 수행법은 걷잡을 수 없게 휘몰아 오는 물질주의 문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삶을 회복하고자 하는 현대인에게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우파니샤드의 번역본 중 원문에 가장 충실한 것으로 ‘우파니샤드 I·II’(한길사)가 있다. 최근엔 같은 역자가 청소년을 위해 풀어쓴 ‘우파니샤드: 귓속말로 전하는 지혜’(풀빛)가 출판됐다.
조은수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