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또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에게 직소하는 서신을 띄웠다. 이번에는 ‘연정론’이 주제다.
1988년 이래 ‘선거만 하면 여소야대 국회’가 되니 국정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 이럴 경우 대부분의 나라들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연정을 하니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선 연정 이야기만 꺼내면 ‘야합’이다 ‘인위적 정계개편’이다 하니 말을 꺼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어려운 말을 대통령이 이제 꺼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걸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물론 청와대의 연정론에 대해선 비판의 여론도 거세다. 국정의 파탄은 제도 때문이 아니라 능력 부족 때문이요, 문제는 여소야대가 아니라 어설픈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에 있다는 공박 등이다. 그것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연정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노 대통령이야말로 대통령제 정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어느 누구도 알아볼 수 있게끔 스스로 시위해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서주(序奏)는 취임 초 국민을 놀라게 했던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는 발언이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실토다. 그리고 최근의 보기는 대통령이 지도력을 행사할 아무런 지렛대도 없으니 자기는 ‘어느 나라보다 힘없는 정부 수반’이란 이번 대국민 서신의 하소연이다.
노 대통령처럼 소신이 뚜렷하고 임기응변의 돌파력이 있고, 군부전제와 지역감정의 장벽에 혼신의 저항을 했던 높은 도덕성으로 젊은 세대의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지도자…. 그러한 인물이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대통령 노릇 못해먹겠다”고 한다면 이 나라에 대통령 노릇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총칼로, 혹은 간계로 어떻게든 청와대에 들어가서는 수천억 원의 비자금을 챙기고 나오는 재미로 대통령하겠다는 현대의 참주(僭主)들 말고는….
여소야대의 난경에서 노 대통령이 ‘연정’을 생각한다는 것도 이해하고 남는다. 사실 외국에서는 연정을 해서 큰 업적을 성취한 현대사의 사례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던 오스트리아가 ‘적(赤)과 흑(黑)의 모자이크’라 불리던 사회·국민 양대 정당의 튼튼한 대(大)연정으로 10년 만에 중립화 독립을 쟁취한 것이 좋은 본보기다. 오스트리아는 단독 집권이 가능했을 때도 대연정을 유지함으로써 점령군의 내정간섭 기회를 차단했고 ‘냉전시대의 기적’으로 평가되는 미소(美蘇)의 합의를 이끌어 내 1955년 일찌감치 분단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후 서독이 20년 만에 이룩한 정권교체도 연정의 소산이다. 1969년 총선 결과로도 제1당은 여전히 기민당이었다. 그러나 제2당인 사민당과 제3당의 자민당이 소(小)연정을 구성해 서독은 전후 20년 만에 마침내 정권 교체를 성사시켰던 것이다.
굳이 다른 나라의 사례를 끌어올 필요조차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군부 정권을 종식시키고 30년 만에 첫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정권의 탄생도 3당 통합이라는 연립전략의 성공 사례다. 수평적 정권 교체라 일컫던 김대중 정권의 출현 역시 단독이 아니라 DJP제휴라는 호남 충청 기반의 두 정당 연립으로 가능했다.
다만 같은 ‘연정’이라고는 하나 복수의 정당이 같이 정권 담당자로서 연정의 임기 말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유럽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의 정당 연립은 단순히 권력 장악을 위한 선거 전략에 그쳐 집권만 하면 흐지부지되고 그래서 ‘야합’이란 말도 듣게 된다.
왜 그럴까. 저쪽에는 연정의 전제가 있고 우리에겐 없기 때문이다. 연정의 전제는 다름 아닌 의원내각제다. 연정을 하고 있는 유럽의 모든 나라가 그렇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제의 케네디 민주당 정부에서 공화당의 맥나마라를 국방장관에 기용했다 해서 연정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장관 감투라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제는 그대로 놓아두고 야당 인사를 영입한다면 ‘야합’ 소리를 듣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연정을 ‘자연스러운 일’로 본다는 노 대통령의 말이 자신조차 못해먹겠다는 대통령제를 드디어 혁파하겠다는 메시지라고 받아들이련다.
최정호 객원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