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 씨가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에서 자신들이 찾아 나선 동료 산악인 세 명의 영정을 놓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사진 제공 MBC
“친구야 반갑다. 내가 뭐라고 했어. 널 꼭 다시 만나러 온다고 했지. 이젠 따뜻한 곳으로 가자….”
산악인 엄홍길(45) 씨는 에베레스트 눈 속에 꽁꽁 얼어붙은 동료의 시신을 보자 이렇게 외쳤다.
MBC는 8일 오후 9시 55분 엄 씨가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는 전 과정을 담은 ‘아, 에베레스트’(연출 임채유)를 방영한다.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집념의 산악인인 엄 대장은 3월 초모랑마 휴먼 원정대를 결성해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초모랑마’는 티베트 사람들이 에베레스트를 불러 온 이름으로 ‘대지의 어머니 여신’이란 뜻이다.
이번 초모랑마 원정대의 목표는 정상 정복이 아니었다. 2004년 5월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불의의 사고로 숨진 박무택, 장민, 백준호 세 산악인의 시신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3월 에베레스트로 향한 원정대는 네팔 임자체 봉에서 고소 적응 훈련을 마치고 하산하던 중 한 일본 산악인의 시신을 발견해 국경을 넘는 산악인의 우정으로 시신을 수습한다. 하지만 곧 원정대에 위기가 찾아온다. 심한 기관지염을 앓던 엄 대장이 계속되는 기상 악화로 호흡조차 곤란해져 일정을 거의 포기하고 제1 캠프에서 지휘밖에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그러나 엄 대장은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9명의 대원들과 동행해 에베레스트 8750m 스노 피라미드 지점에서 지난해 사망 당시의 모습 그대로 고정 로프에 묶여 있는 동료 박 씨의 시신을 발견한다. 박 씨와 엄 대장은 절친한 선후배이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중 4곳을 함께 오른 동지다.
원정대는 시신을 베이스캠프로 옮기기 위해 3시간 동안 박 씨의 몸을 뒤덮은 얼음을 깼다. 돌풍이 몰아쳐 원정대의 조난 사고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시신을 세컨드 스텝(에베레스트 등반 루트 중 한 곳)으로 옮겨 돌무덤을 만들었다. “무택이를 편안한 곳에 묻어 주겠다”고 했던 엄 대장의 약속이 1년 만에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2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임 PD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요즘 엄 대장과 대원들의 노력은 인간과 휴머니즘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 과정을 고화질(HD) 카메라로 촬영해 8850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서 원정대의 일원으로 산에 오르는 것 같은 현장감이 느껴진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