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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아닌유럽’ 발칸을 가다]유혈테러 여전한 코소보

입력 | 2005-07-07 03:09:00


6년이 넘도록 유엔의 보호령(protectorate)으로 남아있는 코소보의 서부 페이야 지역. 다수 알바니아계와 소수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던 이 지역은 1998년 코소보 내전과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으로 거의 폐허가 됐다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재건된 곳이다.

인근 세르비아나 보스니아로 피란을 갔던 세르비아계 주민들도 하나둘씩 고향으로 돌아와 유엔평화유지군의 보호 아래 다시 집을 짓고 농사도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20여만 명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악명 높았던 세르비아계의 ‘인종 청소’와 NATO 공습 이후 보스니아계의 보복으로 얼룩진 두 민족 간의 반목은 지금도 여전하다. 앤서니 톰슨 유엔행정관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만큼 치안이 안정됐지만 언제까지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소보 북부는 두 민족 간 충돌과 반목이 여전하고, 지난해엔 코소보 전 지역에 걸쳐 사흘 동안이나 폭동이 이어지기도 했다.

세르비아 접경인 미트로비차 지역은 이바르 강을 사이로 북쪽엔 세르비아계, 남쪽은 알바니아계로 철저히 분리돼 살고 있다. 심지어 유엔기구 차량마저 다리를 건널 땐 해당 지역 사람으로 운전사를 바꿔야 할 정도다.

“코소보 사람들은 밤마다 세르비아 군인들이 코소보로 몰려드는 똑같은 꿈을 꾼다고 한다.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겐 그저 좋은 꿈이지만,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겐 악몽일 뿐이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이그나지스 마테이니 지역담당관의 설명이다.

수도 프리슈티나도 예외는 아니다. 2일 도심 한복판에서 3건의 연쇄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코소보 RTK방송의 베톤 루고바(30) 기자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코소보 방문 이틀 전에 일어났다. 이게 뭘 의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코소보에 우호적이었던 거물급 미국인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세르비아계의 테러라는 것이다.

실제로 코소보 알바니아계 주민들에게 미국은 유일한 희망이다. 코소보 공습을 단행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코소보의 영웅이 됐다. 프리슈티나 도심으로 향하는 대로는 ‘빌 클린턴로(路)’로 명명됐고, 고층건물 외벽엔 그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코소보 지역 어디를 가든 ‘코소보 독립, 발칸의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다. 세르비아계로부터 온갖 박해와 차별을 당해온 알바니아계로선 어쩌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주변국의 시각은 다르다. 우선 세르비아가 그리 쉽게 영토를 떼어 줄 리 없다. 독일 정부기구 THW 직원인 크로아티아 출신의 지자 조비치(30·여) 씨는 “외국의 지원 없인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정부를 꾸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코소보의 실업률은 62%에 달하고 인신매매와 조직범죄가 횡행하고 있다. 현재 코소보에 거주하는 인구는 220만 명인데, 절반에 달하는 100여만 명이 돈벌이를 위해 외국을 떠돌고 있다. 과연 코소보 문제의 해결책은 독립일까. 국제사회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쉽지 않은 숙제다.

프리슈티나(코소보)=이철희 기자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