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고(高)유가!” 국제유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지만 투기세력에는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다. 유가 상승의 근본 원인은 만성적인 수급 불안과 산유국의 정정(政情) 불안.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본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석유시장에 개입하면서 유가가 실제보다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실물에 투자하면서 유가 상승을 유도해 비산유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 석유가 헤지펀드를 구했다(?)
6월 이후 국제 석유시장의 특징은 선물시장에 투기성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고 있다는 것.
뉴욕상업거래소가 매주 발표하는 비업무용 선물 계약 현황에 따르면 5월 마이너스였던 순매수 포지션(매수 계약에서 매도 계약을 뺀 것)이 지난달부터 플러스로 돌아섰다.
특히 6월 7일 1357계약이던 순매수 포지션은 3주 만에 2만2008계약으로 16배가량 늘었다.
비업무용 선물 계약은 단기 차익을 위해 석유를 사고팔 때 신고하는 물량으로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이 주로 거래한다.
반면 일반 업무용 선물의 순매수 포지션은 유가가 60달러에 근접했던 지난달 21일에는 마이너스 4146계약, 28일에는 마이너스 6494계약이었다. 팔겠다는 주문이 사겠다는 주문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헤지펀드가 석유시장으로 몰려든 이유는 무엇보다 금융시장에서 입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의 신용등급 하락과 달러화 가치 급등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석유시장에 가세하면서 손실 일부를 만회했다.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대규모 환매에 나서 국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6월 위기설’도 ‘가설’로 끝났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헤네시그룹에 따르면 4월 헤지펀드들의 평균 수익률은 ―1.75%로 1999년 이후 최악이었지만 6월에는 1.3%로 미약하나마 회복됐다.
○ 투기성 장세 언제까지 갈까
전문가들은 올해 들어 원유 선물만큼 수익률이 좋은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헤지펀드의 석유시장 개입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국제 유가 상승은 수급 불균형 이외에 상품시장으로 풍부한 유동성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제 석유는 하나의 주식처럼 거래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능력이 한계에 달한 데다 20여 년간 석유 메이저(국제석유자본)와 산유국들이 생산 설비에 투자하지 않아 단기간에 공급을 늘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투기성 자본의 횡포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공급 부족→가격 상승→투기성 자금 개입→가격 추가 상승’이라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李文培) 연구위원은 “북반구가 겨울이 되는 연말에는 석유 수급이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있다”며 “이로 인해 투기성 자본이 개입할 여지가 커져 고유가 문제는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헤지펀드: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돈을 모아 주식이나 외환시장에서 단기 수익을 거두기 위해 조성된 펀드. 본래 의미는 위험을 회피(헤지)하기 위한 펀드이지만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행태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