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29개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편집·보도국장 10명의 질문에 답했으며 이어 국장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석동률 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7일 중앙 일간지와 경제지, 방송 및 통신사, 인터넷매체 등 29개 언론사 편집·보도국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 당초 노 대통령은 본보를 비롯한 31개 언론사 국장을 초청했으나 본보와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불참했다. 이번 간담회 관련 기사는 청와대가 배포한 발언록을 토대로 작성했다.》
▼[정치]“어떤 식으로든 與大로 갈것”▼
노무현 대통령은 7일 지역 구도와 여소야대 구도의 해소를 위해 국무총리와 내각을 국회 다수 정파에 넘기는 ‘내각제적 권력 분점’ 용의가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전날 내놓은 대(對)국민 서신에서는 ‘대통령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했으나 이날은 아예 “대통령 권력을 내놔도 좋다”고 한발 더 나갔다.
“선거를 다시 하면 국민이 너무 힘드니까 실질적으로 권력만 이양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남은 임기 도중이라도 자신은 형식적인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직만 유지하고 실질적인 권력은 연정(聯政)의 총리와 내각에 넘기겠다는 강한 의지도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원래 내가 쓴 (서신의) 원본에는 ‘대통령의 권력을 내놓겠다’고 했는데 연설팀에서 ‘권력을 이양한다’는 게 과격한 것 같아서 중화시킨다고 ‘권력의 절반 이상을 이양하겠다’라고 고쳤다”며 “그래서 이걸 고치지 말라. 핵심적 메시지라고 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어 “왜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느냐. 이 문제의 중요성과 기울이는 나의 정성을 다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부연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여소야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여대로 간다. 내각제가 그렇다”고 말했다가 이 발언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듯 곧바로 “내각제 발언은 취소하자. 이론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처럼 정당적 통제가 없는 나라에서만 여소야대가 얼마간 유지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 연정을 한다”며 “거국적 국정운영을 하는 경우에는 심지어 국영기업체 사장, 부사장까지 나눠서 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소연정이든, 대연정이든 정계 개편의 음모, 야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어 어려운 것 같다”며 “대통령의 사정으로 못하는 게 아니라 야당 사정이 못 받아주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현재의 분위기에서는 연정 구성이 쉽지 않다는 점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치분야 발언요지
○ 연정 얘기 나오는 것이 부도덕한 것으로 매도돼서는 안 된다. 연정은 세계적으로 승인된 합법적이며 정당한 정치행위다.
○ 거국적 국정운영을 못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야당 사정 때문이다.
○ 야당이 연대해 정권을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할 테니 대화정치를 해보자. 그게 안 되면 소연정 대연정이라도 하자.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경제]““한국경제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 않는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후보 때 공약으로 내세운 경제성장률 7%에 대해 ‘잘못된 예측’이었음을 시인했다.
노 대통령은 “한번 해보자고 신바람 내면 어지간한 한계는 금방 돌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빗나갔다”고 말했다. 예측이 빗나간 이유로 노 대통령은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간과했고 △신용카드 대란으로 인한 가계신용불량의 여파를 충분히 간파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가계신용불량과 카드회사의 부실이라는 두 가지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성장률을 3∼4%대에 묶어두고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회복의 속도가 대단히 느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한국경제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특유의 낙관론을 그대로 내비쳤다.
그는 “욕심에 차지는 않지만 금융위기, 카드채 위기,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소해 가면서 (경제가) 붕괴되지 않았다, 현저히 후퇴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공급이 적고 수요가 많아서 보유세, 소득세 등을 다 (집값에) 전가해 폭리를 취하지 않도록 공공부문이 책임지고 낮은 금리를 동원해 (주택) 공급을 충분히 하겠다”며 주택 공급 확대를 약속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은) 쓸 수 있는 수단, 합법적인 수단은 다 쓰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부동산에 올인(다걸기)하고 매달리는 이유는 투기 소득으로 양극화가 생기는 것은 상실감이 크기 때문이고, 그래서 부동산 정책은 정말로 전쟁하듯 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경제분야 발언요지
○ 부동산 문제가 사회 양극화의 핵심적인 원인이다. 그래서 부동산 정책을 전쟁하듯이 추진하고 있다.
○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회복 속도가 아주 느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교육]“入試말고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것 많다”▼
최근 서울대와 정부의 전면전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대입 본고사 부활’ 움직임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반대의 뜻을 밝혔다.
대학의 ‘인재 독점’을 위한 본고사는 과외열풍 등으로 공교육을 파괴할 수 있는 만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6일 당정이 서울대의 2008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사실상 본고사 부활”이라며 저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 입장을 밝힘으로써 대학들은 향후 입시안 마련에 더 큰 부담을 지게 됐다.
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대학이 (학생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일등부터 차례대로 끊어가서 나온 대학경쟁력이 세계 몇 위냐”며 기존의 입시제도 효과에 불신감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대학은 1000분의 1 수재를 뽑으려 하지 말고 100분의 1 수재를 데리고 가서 교육을 잘할 생각을 하라”고 말했다. 최고를 선발할 생각만 하지 말고 입학 이후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방법을 더욱 고민하라는 지적이다.
대학의 자율성에 대해서는 “서울대는 간섭, 자율에 대한 문제로 보나 본데 대학 자율에도 한계가 있다”며 “입시 말고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못 박았다. 따라서 대학입시 정책만큼은 대학이 양보하고 국가 정책에 맞춰달라는 게 노 대통령 주장의 핵심이다.
■교육분야 발언요지
○ 대학의 입장 때문에 고등학교 공교육이 파괴되고 과외 열풍이 되살아나서는 안 된다. 대학입시제도는 국민 모두에게 유익하도록 대학이 양보해 주었으면 좋겠다.
○ 대학은 서열화되면 안 된다. 각 대학이 특성을 살려 전문 분야별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언론]“나를 도와주는 언론 없는게 가장 큰 어려움”▼
여우(대통령)가 두루미(언론인) 손님을 모셔 놓은 것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간담회에 이어진 오찬에서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얘기에 빗대어 언론에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정부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져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며 “내가 느끼는 제일 큰 어려움은 나를 도와주는 언론, 나에게 우호적인 언론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은) 대통령이라는 권력은 뭔가 공작하고 음침한 일을 하는 자리라는 불신을 갖고 있다. 대통령 편을 들어서 글을 쓴 것으로 간주되면 선명성이 떨어져서 재미를 보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처음부터 좀 껄끄러웠던 부분이 있다. 차분한 설득 과정이라든지 점진적 과정을 밟지 않고 일거에 무 자르듯이 해버렸기 때문에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며 취임 초 대(對)언론정책에 문제점이 있었음을 시인하기도 했다. 긴장관계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협력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였다. 이어 노 대통령은 “이제 풀었으면 좋겠다”면서 “정치와 언론 간에 동반자적 협력관계를 맺어보자”고 제안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영남지역 낙선자 배려’에 대해 “사실 열린우리당은 전국당이 되는 게 목표다. 제도를 바꿔서 지역 구도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열린우리당이라도 인물을 키워서 영남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당선시키고 일보라도 전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인사였음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국정에 큰 지장 없이 할 테니 그거 하나는 좀 봐 달라. 저울처럼 한 쪽이 기운 데를 북돋우는 것으로 생각해 달라”고 말했다.
■언론분야 발언요지
○ 나를 도와주는 우호적인 언론이 없다. 대통령이라는 권력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
○ 대언론관계에 있어 차분한 설득과정이나 점진적 과정을 밟지 않고 무리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 풀었으면 좋겠다. 정치와 언론이 동반자적 협력관계로 가면 좋겠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내실있는 토론 불가능… 본보 편집국장 불참▼
본보 편집국장이 이번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드립니다.
청와대는 지난달 30일 간담회 개최 취지에 대해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정 전반에 대해 기탄없는 대화를 통해 대통령의 구상과 생각을 소상히 밝히고, 밀도 있는 대화를 위해 편집·보도국장과의 간담회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참석 대상은 31개 언론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1시간 30분 동안 참석자 대표 인사말과 대통령의 모두(冒頭)발언을 포함해 31명의 편집·보도국장이 국정 전반에 대해 대통령과 기탄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참석한다 하더라도 일부 국장만 질의를 짧게 할 수밖에 없고, 보충 질의도 불가능해 밀도 있는 대화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간담회가 최근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각종 현안에 대해 대통령의 구상을 밝히고, 내실 있는 토론과 질의응답을 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본보 편집국장은 참석하지 않았음을 밝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