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슬럼프를 겪고 있는 박세리.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골프는 휘발성이다. 꿈이다. 될 듯 될 듯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필드를 가로지르는 하얀 공은 영락없는 한 마리 새다. 새는 금세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앨버트로스, 이글, 버디…. 새 이름을 딴 골프용어엔 날갯짓에 대한 인간의 꿈이 서려 있다.
골프는 ‘멘털(mental) 게임’이다. 정신력이 강한 골퍼는 흔들리지 않는다. 가만히 새들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이글도 잡고, 버디도 잡아낸다.
‘깡’이 많다고 정신력이 강한 것은 아니다. ‘핏빛 붕대’를 머리에 두른 축구선수가 꼭 정신력이 강철같은 것은 아니다. 거스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은 부임 초기 “한국 선수들은 학습 의욕은 높지만 감정 통제능력 등 다른 정신력 부분은 30점 이하”라고 혹평했다.
히딩크 전 감독이 말하는 ‘운동선수의 정신력’이란 무엇일까.
첫째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게임에 들어가기 전 주눅 든다.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요즘 박세리는 한눈에 봐도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겁 없는 소녀’의 당당함이 사라졌다. 반면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린 위를 걷는 그의 발걸음엔 위엄마저 느껴진다. 박세리 50점, 소렌스탐 100점.
둘째는 감정 통제능력이다. 한국선수들이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히딩크 전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경기 중 흥분하는 경향이 많아 엉뚱한 센터링이나 패스를 날린다”고 말했다. US여자오픈 마지막 18번 홀에서 벙커 샷을 홀에 그대로 넣으며 우승한 김주연 100점. 이에 전의를 상실하며 2타차로 무너진 미국의 아마추어 모건 프레셀 70점.
셋째는 집중력이다. 축구 경기 종료 직전에 골을 먹거나 골프에서 50cm 퍼팅을 놓치는 경우가 그렇다. 한국 여자선수들이 유독 강하다. 한국 여자양궁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6연속 개인전 우승과 88 서울올림픽 이후 5연속 단체전 우승 행진을 벌이고 있다. 여갑순, 강초현, 이보나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사격 선수들도 이에 못지않다. 한국 여자양궁 100점, 한국 여자사격 90점. ‘똥볼’ 잘 차는 한국 축구 50점.
네 번째는 상상력.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창조 정신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창조 정신이란 덤불 사이의 작은 틈이나 샷을 위한 특별한 길과 같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내부의 눈’”이라고 말한다. 창조력 번득이는 ‘축구천재’ 박주영 90점.
다섯째는 동기 유발이다. 연금 혜택, 군대 면제 등이 동기 유발 요인이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이후 한국축구대표팀은 한때 베트남에도 졌다. 돈과 명예를 움켜쥔 선수들이 배가 불렀던 것.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으로 이적한 박지성 100점. 스페인에서 국내로 복귀한 이천수 60점.
여섯째는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한국 선수들은 지나치게 많은 훈련량과 오랜 합숙 등으로 ‘운동 기계’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 운동을 즐기지 못하고 승부에만 매달린다. 슬럼프를 딛고 한결 성숙해진 미국 메이저리그의 박찬호 90점. 지나친 부담 때문에 들쭉날쭉한 피칭을 보여주는 김병현 50점.
마지막은 훈련에 임하는 자세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80점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 진지하게 배우려는 자세. 지도자의 지시에 순종하는 태도는 외국선수들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다.
정신력은 ‘꿈을 잡는 그물’이다. 하지만 그 그물은 ‘여유’와 ‘폭 넓은 사고’란 실로 짜여진다. 그런데 왜 한국 선수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쉽게 무너질까. 왜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 할까. 집착하면 새는 보이지 않는다. 금메달에 집착하는 순간 금메달은 사라진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