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엄마들도 모두 죽겠다고 난리입니다. 지옥 같은 이곳에서 아이 키우기 싫다고, 돈만 있으면 이 나라 뜨고 싶다고 말입니다. 아이를 낳아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먼저 아닙니까.”(자녀 셋을 둔 한 독자의 e메일에서)
6월 28일∼7월 8일 ‘출산율 1.19 쇼크, 작아지는 코리아’ 기획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기자에게는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든 현실에 대한 하소연이 쏟아졌다.
임신 3개월째인 한 독자도 e메일에서 “가장 기초적인 초음파 검사도 보험 적용이 안 된다”며 ‘출산 지원 시스템도 없이 낳으라고만 하는 무책임한 정부’를 원망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성들은 ‘출산 장려’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대적인 산아제한 정책을 펴 놓고, 양육 친화적 환경도 마련해 놓지 않은 채 이제 와서 갑자기 국가의 장래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니…. 반발감이 생길 만하다.
출산율 회복은 양육의 고비용 구조 하에선 가족과 개인에게 상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 출산율 회복에 거의 100년이 걸린 프랑스에서 보듯 단기간에 가능한 일도 아니다. 정부는 역효과만 불러올 ‘출산 장려’보다 아이를 낳아 키우기 편한 환경을 만드는 쪽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기자가 느낀 또 하나의 문제는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라도 우리 사회에 ‘차이’를 수용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회복된 나라들은 혼외출산과 입양, 이민이 활발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과 동떨어진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으면서 낙태는 연간 100만 건이 넘으며 낯 뜨겁게도 세계 4위의 ‘아동 수출 국가’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또 어떤가.
이는 ‘표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을 ‘비정상’으로 배척하며 ‘핏줄’에 유난히 집착하고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배타적 문화 때문이다.
차별이 없고 관용성이 높은 문화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원하는 자녀를 낳아 키울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의 선결조건이다. ‘차이’를 받아들이고 다양한 사람과 가족이 섞여 살아야 미래가 있다.
김희경 교육생활부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