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서양문학의 전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으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중세 후기에 이미 뚜렷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문예 부흥기에 이르면 오비디우스의 영향은 절정에 달한다.
‘변신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해 후대인에게 전해준 결정적인 문헌이다. 그러므로 이 저술은 문학작품이면서 동시에 신화기록으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로 후대에 알려진 그리스 신화는 많은 경우 이 작품을 원전으로 하며, 널리 읽히는 불핀치나 해밀턴이 서술한 그리스 신화도 모두 오비디우스를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작품을 탄탄한 구성과 주제적 통일성의 관점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 앞에서 절망할 것이다. 각 이야기가 모두 변신에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뚜렷이 어떤 주제적 통일성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매우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다. 한 이야기에 이어 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할 어떤 필연적인 이유를 찾기 어려우며, 오비디우스는 그때그때 편리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점이 그다지 흠이 되지 않는다.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의 원천은 경탄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교묘하게 짜인 그리스 신화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전체적인 주제를 들자면, 이 작품에 수록된 것은 결국 사랑과 애욕(愛慾)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젊은 남녀 간의 사랑은 물론이요, 인간을 미치도록 사랑한 신의 이야기, 불멸의 신을 짝사랑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 동성애, 자기애, 아버지와 딸 간의 또는 오누이 간의 사랑 등 사회적으로 용인된 또는 금기시된 모든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이 작품 전편에 걸쳐 펼쳐진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오비디우스는 인간 심리의 다양한 측면을 탐색한다. 오비디우스의 세계에서 꽃과 나무, 새, 돌, 메아리 등 자연계의 사물과 자연현상에는 모두 사랑, 증오, 질투, 분노, 복수심 등 어떤 사연이 간직되어 있다. 그 애틋한 사연의 결과 인간은 어찌할 수 없이 그런 것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애욕은 인간이 피할 수도 없고, 거역하거나 저항할 수도 없는 존재조건이라는 생각이 이 작품에 짙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비디우스는 로마인들이 세운 제국 ‘Roma’의 철자를 거꾸로 하면 애욕의 신 ‘Amor’가 된다는 사실을 대단히 흥미롭게 여겼다. 제국을 이룩한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력에 의한 정복전이었을진대, 오비디우스는 폭력과 인간의 애욕이 동전의 양면이라고 느꼈음일까? 엄청난 제국을 이룬 로마는 문화적으로는 피정복국인 그리스의 압도적인 영향하에 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로마는 무엇인가? 그리스와 구별되는 로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변신’의 주제는 이러한 로마의 정체성 문제에 간접적으로 물음을 제기하는 장치가 된다. 로마를 바라보는 오비디우스의 시선에는 그래서 약간의 지적 희롱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아마도 이 점이 아우구스투스의 눈 밖에 나서 흑해 연안의 작은 마을로 추방되는 이유이기도 하였으리라고 짐작되고 있다.
이성원 서울대 교수 영어영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