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방식/정동일 지음/240쪽·1만2000원·김영사
1980년대에 여상(女商) 졸업생들에겐 신한은행이 단연 인기 직장이었다. 월급이 다른 은행보다 꽤 많았고 신설 은행이라 승진 기회도 엿보였기 때문이다. 명문 여상 최우수 졸업생들이 몰렸다.
상고를 나와 은행에 들어가서 야간대학을 졸업한 은행원들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1982년에 문을 연 신한은행에 속속 합류했다. 이들은 새 직장에서 대졸자 대접을 받는 데다 열심히 일한 만큼 인정해줘 신바람이 났다.
재일동포들이 출자해 세운 신한은행 점포에 들어가면 여느 은행과는 분위기부터 달랐다. 직원들의 표정이 밝고 손님을 모시는 태도가 깍듯했다. 겉모습뿐 아니라 대출청탁이 통하지 않는 등 정도(正道)경영에서도 앞섰다. 일본의 선진 금융기법도 도입됐다. 금융계를 취재하던 주니어 기자 시절의 필자는 당시 “새 DNA를 지닌 은행이 한국에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 2005년 7월, 마침 신한은행의 창립 23주년에 즈음하여 ‘신한은행 방식’이라는 책이 출판됐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정동일 교수가 집필했다.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신한은행의 우수성을 발견한 게 계기가 돼 본격 연구한 결과물이다.
저자에게 신상훈 신한은행장이 당부했다고 한다. “자랑만 늘어놓아 신한은행 임직원들만 읽는 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신한은행을 ‘벌떼와 같은 열정 조직’이라 보았다. 도전정신, 스피드, 열정, 팀워크 등으로 요약되는 조직문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서울 경동시장에서의 성공사례를 보자. 은행원이 수레에 동전을 싣고 시장 안을 돌아다니면서 상인들에게 잔돈을 바꿔주며 통장 개설을 유도했다. 경기 군포시 산본 신도시를 건설할 때는 주민 시위현장에까지 찾아가 음료를 나눠주며 신뢰를 쌓았다.
신한은행의 임직원 인사는 매우 공정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학연, 지연이 배제되고 능력 위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임원진의 절반가량이 상고 출신이다. 간부와 실무 직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장벽이 얇아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도 장점.
저자는 신한은행의 성공 요인을 ①고객 중심의 서비스 마인드 ②열정으로 뭉친 강한 조직문화 ③평범한 사람들을 비범하게 만드는 인사시스템 ④참여해 이끄는 변용의 리더십 ⑤한발 앞선 혁신 ⑥윤리경영과 투명경영 ⑦사회적 책임 경영 등 7가지 ‘신한은행 방식’으로 요약했다.
신한은행이라 해서 어찌 실패 경험이 없으랴. 이를 밝히고 반성하는 내용도 소개했더라면 이 책이 더욱 빛날 텐데….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