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운 경제부 차장.
대형 할인점들의 가격인하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최저가 행사가 벌어진다. 마침내 지난달 말 업계 3위인 롯데마트가 이마트 홈플러스의 실명을 거론하며 제품 간 가격 비교를 했다.
발끈한 이마트는 롯데마트에서 싸게 판다는 상품 중 몇 개를 골라 절반 값에 내놓는 강수로 맞섰다.
시시각각 바뀌고 점포마다 다를 수 있는 것이 할인점 판매가인데, 롯데마트가 자사에 유리한 것만 골라 다른 할인점보다 싸다고 주장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할인점의 가격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요 외국계 할인점들도 최저가 판매에 사활을 걸고 있다. 다른 업체가 가격을 내리면 더 낮출 수밖에 없는 게 할인점의 영업 환경이다.
국내시장도 점차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다. 6월 말 현재 이마트 등 5개 대형 할인점의 전국 점포 수는 280여 개. 올 하반기에 21개가 더 생기면 300개를 훌쩍 넘는다. 어딜 가든 반경 1∼2km 안의 동일 상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소비 행태의 변화도 가격 경쟁을 유발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비싼 상품에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도, 생활용품은 싸고 실속 있는 것을 찾는다. 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원 플러스 원(1+1) 상품’에 소비자들이 몰리게 돼 있다.
최저가 경쟁은 더하면 더했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과당 경쟁에 따른 피해를 호소한다.
아무런 상의 없이 기획전, 초저가 행사를 해놓고 나중에 차액만큼 납품가를 깎거나 광고비와 마케팅 비용을 떠넘기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할인점 납품업체들은 하소연한다.
할인점은 “재고상품을 깎아 파는 것이니 손해가 나도 피해는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 하지만, 제조업체는 “어떤 형태로든 납품업체 부담으로 떠넘긴다”고 주장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할인점의 부당 행위를 막기 위해 4월 최고 3000만 원의 포상금을 주는 신고포상금제를 도입했으나 지금까지 포상금이 지급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래관계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신고를 못 하기 때문이다.
가격경쟁은 가격파괴를 부른다. 할인점은 국내에서 싼 조달처를 찾지 못하면 주저하지 않고 해외에서 납품업체를 구할 수 있다. 글로벌 소싱의 확대는 시간문제다. 지금도 진열대엔 중국산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도 버블이 꺼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유통업체의 글로벌 소싱이 유행처럼 번졌다. 가격파괴로 이어지면서 많은 중소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할인점의 부당 행위는 비판해야 할 일이지만, 가격경쟁 이후 살아남는 중소업체들이 얼마나 될지 걱정부터 앞선다.
이강운 경제부 차장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