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선비 김득신(金得臣)은 ‘사기’ 열전이 너무 좋아 일생 동안 무려 1억2만80번을 암송했다고 한다. 물론 극단적인 과장이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동아시아에서 가장 애독된 역사서가 ‘사기’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그 인기는 현재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사기’는 사마천이 중국 문명 초기 단계에서 자기가 생존한 기원전 1세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약 2000년 전 저술된 중국 고대 역사책이 왜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가장 흥미 있는 주제를 박학다식한 천재가 예리한 통찰력으로 통관하고 생명을 건 사명의식을 갖고 집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문명은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확립하는 과정이었고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기반과 제도를 창조 발전시켰다. 황제 지배체제는 동아시아 고대 문명을 가장 효과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도록 개발된 체제인데, 사마천의 시대는 그 체제가 대체로 완성된 시기다. 제국은 문명의 결정체였고, 그 발전의 주체였다. 사마천은 바로 이 문명과 제국을 ‘역사’로 만든 것이다.
사마천은 어떤 위대한 문명도 역사가에 의해 ‘역사’로 서술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이 문명의 ‘역사화’를 자신의 운명적인 사명으로 자각했다. 그가 ‘사기’의 저술을 공자가 지었다는 ‘춘추’의 계승이라며, 커다란 치욕과 시련(궁형)의 순간에도 ‘사기’의 완성을 위해 생을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마천은 가능한 한 모든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했고, 자신이 통찰한 문명의 본질과 그 변화 발전의 과정을 가장 적합한 체제와 문장으로 서술했다. 그는 궁정의 도서관에 보존된 전적과 문서를 거의 빠짐없이 섭렵하고 역사의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청취했다. 그 결과 그는 인간의 역사를 우주 질서와 인간의 능동적인 의지가 맞부딪친 결과로 파악했고, 그것에 시간과 공간의 좌표와 함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기전체(紀傳體)란 독특한 체재를 창안했다. ‘사기’가 모든 역사를 포괄한 종합사 통사 세계사가 된 것도, 전체 권수와 각 부분의 권수가 모두 우주 성수에 맞춰진 것도, 특정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가치 평가가 서술된 위치로써 표현된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특히 사마천은 ‘열전’에 압도적인 비중을 할애해 인간 주체의 역사를 제시했다. 여기에는 고대 문명과 삶을 구성하는 요소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인물이 수록됐다. 심지어 거리의 깡패까지 포함된 다양한 인간은 현명함과 어리석음, 선과 악, 도덕과 이욕, 이상과 현실의 사이를 오가며 좌절과 성공을 거듭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뭐, 그러면 어때요’하며 사는 몰가치한 사람은 없고 모두 나름대로 문명적 가치에 동참하려는 비장한 의지와 자각이 충만하다. 바로 이 점이 ‘사기’의 백미인데, 냉철한 사마천이 간간이 감정을 폭발하는 장면은 그 묘미를 더해 준다. 시정잡배에서도 확인되는 자각과 의지의 역사화, 이것은 바로 사마천이 자각한 사명과 의지였다.
고금의 변화를 창조한 주체와 저자가 맞부딪치면서 그 변화의 원리와 문명적 가치가 제시된 ‘사기’. 현대의 독자에게, 특히 열전을 중심으로, 일독을 권하는 것은 바로 이 매력 때문이다.
이성규 서울대 교수·동양사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