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히 찾았고 내 조국 산하를 정말 사랑하게 됐습니다.”
12일 전남 보성군 보성남초등학교 운동장. 장대비에 시달린 텐트를 걷느라 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황승현(黃勝賢·24·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기계공학과·사진) 씨도 주섬주섬 젖은 옷을 입고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25일 경북 포항시 호미곶을 출발해 남해안 707km 도보 일주에 나선 2005 대한민국 문화원정대(주최 ㈜엔씨소프트·후원 동아일보사 서울시·협찬 노스페이스) 128명의 대학생 대원 중 한 명. 원정 18일 동안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朴英碩·42·골드윈코리아 이사) 원정대장과 함께 걸어온 길은 무려 438km. 발에 물집이 잡혀 절뚝거리면서도 그는 “정말 참가하길 잘했다”고 말했다.
황 씨는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는 사례가 만연한 요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인물. 초등학교를 졸업한 1993년 미국에 유학을 간 황 씨는 대학 2학년을 마친 2002년 9년 만에 돌연 한국으로 돌아왔고 곧바로 자진 입대했다. 교포는 아니지만 미국에서 성장했고 대학 재학 중이어서 입대 연기는 물론 맘먹기에 따라서 국적을 바꿀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췄지만 당당히 입대를 택한 것.
“2학년이던 2001년 겨울에 ‘나는 과연 한국인인가 미국인인가’ 하는 갈등에 빠졌어요. 한마디로 정체성 혼란이었죠. 그래서 고민 끝에 한국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 본 뒤 선택하자고 생각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툴다고 신병 때 고참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는 그는 2003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다산부대에 지원해 6개월간 통역병으로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올해 1월 제대한 뒤엔 고려대에서 교환학생으로 기계공학과 3학년 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제대한 지 6개월도 지나지 않았는데 텐트생활을 해야 하는 문화원정대에는 왜 참가했을까? “사실 전 경상도 전라도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거든요. 12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땅을 직접 체험하고 싶었죠. 그래서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거다 싶어 지원했어요.”
그는 “파병 나가서 미군들과 상대하며 정말 나라가 강해져야겠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고 이번 문화원정대에서 나 자신을 버리는 희생정신을 배웠다”고 덧붙였다.
보성=전 창 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