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을 알 수 없는 가해자에게 스토킹을 당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KBS2 ‘추적 60분-4년간의 그림자’. 사진 제공 KBS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2004년)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여자(이나영)에게 스토킹을 당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성 관객들의 상당수가 영화를 본 후 저렇게 예쁜 여자에게 스토킹 좀 당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스토킹을 당한 사람들은 ‘자살 충동을 느꼈을 정도로 끔직한 경험이다’고 말한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00년 수도권에 거주하는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15.8%인 189명이 ‘스토킹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KBS ‘추적 60분’은 18일 밤 11시 5분 스토킹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4년간의 그림자-나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연출 이견협)를 방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4년간 지독한 스토킹에 시달린 사람의 제보로부터 시작된다. 놀라운 것은 제보자의 사례가 이미 2003년 8월 ‘추적 60분’에서 방영된 ‘현장추적, 죽음을 부르는 스토킹’에서 소개된 사례라는 것. 2003년 방송 직후 스토커는 피해자에게 “잘못했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줄 몰랐고 다시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사죄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가해자는 다시 스토킹을 시작했다. 현재 경찰은 범인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채 검찰에 사건을 넘긴 상태다. 사건의 피해자 이정훈(가명) 씨는 길을 걷다가도 자꾸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생겼고 부인은 유산했으며 어머니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왜 스토킹이 계속되고 있었을까? 우리나라에는 스토킹 처벌법이 없나? 경찰이 스토커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작진은 의문을 하나하나 밝혀 나간다.
수사진은 스토커가 피해자 부인의 휴대전화를 복제해 스토킹을 시작했다고 추측한다. 가해자는 복제한 휴대전화로 오전 1∼2시에 순간적으로 전원을 켜 피해자 가족들에게 욕설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이 때문에 위치를 추적하기 어렵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도 스토커는 금세 이를 알아내고 스토킹을 계속한다.
제작진은 신경정신과, 범죄 심리 전문가, 사이버 사립탐정 등 각계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스토커의 실체를 추적한다. 이 밖에 내연남의 절교 선언에 앙심을 품고 내연남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국의 1000여 명에게 욕설과 음란한 문자메시지를 보낸 40대 후반 여성의 엽기적인 스토킹 행각도 소개한다.
이건협 PD는 “1999년, 2003년 ‘스토킹 처벌에 대한 특례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아직 표결조차 안 된 상태”라며 “스토킹은 주로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상 추근거림을 법적으로 명확하게 선을 그어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