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1인 출판사 용오름의 서사봉, 에코의서재의 조영희, 산처럼의 윤양미 대표.
국내 최대 서적 도매상인 송인서적의 윤성기 이사(46)는 서적 도매업 20년에 요즘처럼 새 출판사가 많이 생기는 것은 처음봤다고 말했다. 새로 거래를 트자는 창업자들이 하루 열 명을 넘는 수준이다. 윤 이사는 “그중 혼자서 꾸려가는 ‘1인 출판사’가 절반을 넘는다”고 말했다.
1인 출판사가 급속히 늘고 있다. 최근 ‘사이’란 이름의 1인 출판사를 차린 권선희(35) 씨는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의 국제표준도서번호(ISBN) 교육실로 찾아갔다가 깜짝 놀랐다. 출판 창업자가 반드시 한번은 방문해야 하는 이곳에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부분 혼자 출판사를 차린 사람들이었다”고 전했다.
1인 출판사는 창업자 한 사람이 기획 편집 경영 영업을 맡고 디자인 조판 배본은 바깥의 힘을 빌린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디지털화로 책 만드는 게 쉬워져 제작비가 예전보다 3분의 1 수준이 됐다”며 “인터넷 서점과 서적 유통 보관 전문 업체도 등장해 1인 출판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1인 출판사는 ‘슬림’ 그 자체다. 출판 메카라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이나 1인 출판사들이 몰려들고 있는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본사 근처 오피스텔 촌에 열대여섯 평짜리 오피스텔을 얻었다면 아주 양호한 수준이다.
안정된 대형 출판사 등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젊은 출판인들이 1인 출판사를 차리는 것은 ‘조직에서 부대끼기보다 독립해서 승부를 걸어보기 위해서’다. 1인 출판사 ‘용오름’의 서사봉(42) 대표는 ‘독립’이란 초심을 명심하려고 출판사 등록일을 지난해 광복절로 했다고 한다.
1인 출판사는 색깔을 분명하게 함으로써 승부를 걸려 한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는 생태와 환경, ‘르네상스’는 건축과 인문, ‘용오름’은 경제 경영, ‘산처럼’은 역사와 인문 등으로 개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다른 승부수는 ‘목숨 걸고 책 만드는’ 장인 정신의 발휘다. ‘사이’의 권 대표는 첫 책을 펴내면서 “보통의 서너 배 기간인 반년 동안 지겹도록 가다듬었다”고 말했다. ‘에코의서재’의 조영희 대표는 “새로 낸 책을 안 받아주는 인터넷 서점도 있어서 정말 품질로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독자들은 자기가 신뢰하는 1인 출판사의 브랜드를 보고 책을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1인 출판사가 ‘대박’을 낼 수는 있을까. 2000년 ‘프로메테우스’ 출판사가 첫 책으로 펴낸 ‘창가의 토토’가 35만 부나 팔려 나간 것은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신화같은 일. 1인 출판사가 ‘대박’ 내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내용도 좋아야 하지만 유통 쪽에서도 힘을 받아야 하는데 1인 출판사가 이 모두를 잘 해내기는 힘들다.
1인 출판사 사장들은 돈을 벌게 되더라도 규모를 크게 키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신충일 사장은 “혼자 만든 ‘창가의 토토’ 이후 직원을 2명만 더 채용했다”며 “결국 (소규모) ‘대장간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비용을 절감해 오래가고, 원하는 책을 꼼꼼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기호 소장은 “미국 출판인 제이슨 엡스타인은 ‘북 비즈니스’란 책에서 디지털 덕에 장인 출판의 황금시대가 온다고 내다봤다”며 “우리 사회에서도 1인 출판은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