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칭다오와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국문학 관련 세미나를 참관하면서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라고 했을 때 그동안 우리가 주로 신경을 써 온 대상은 미국이나 유럽의 몇 개 국가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좋든 싫든 일정한 역사를 공유해온 주변 국가들로부터 제대로 이해받지 못한 문학이 멀리 떨어진 낯선 언어권의 나라에서 제대로 평가받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지 않을까.
중국이나 일본에서 최근 한국문학과 관련하여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엔 빛과 어둠이 교차한다.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과 전망’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진 중국 칭다오대의 경우 이 도시에 최근 한국의 투자가 집중되었다는 사실 때문인지, 외국어 전공 학과 가운데서도 한국어과가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학생들의 지망 순위에서 프랑스어나 독일어 관련 학과를 제친 것은 옛날 일이고 요즘은 일본어과보다도 한국어과를 찾는 학생들이 더 많다고 한다. 더욱이 칭다오대는 옌볜에 있는 대학과 달리 한국어학과에 조선족의 입학을 불허하고 있다. 학과 이름도 조선어과가 아니라 한국어과다. 즉 한국어가 자국 내 소수민족 관리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외국어로서 교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한국어가 인기가 있는 것은 졸업 후 취직이 유리하다는 점 때문이며 따라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그 자체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어과 학생들의 경우 상당한 한국어 구사 실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한국문학 독서 수준은 빈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들이 읽은 한국문학은 고작 교과서에 실린 시와 단편소설에 머물러 있었고 최근 조금씩 중국어로 번역되고 있는 현대 한국문학과는 아직은 멀어 보였다. 그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것은 한국문학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잘생긴 남녀 배우와 화려한 생활이었다.
대중문화 차원에서 일고 있는 이른바 한류 붐과 한국의 고급문화, 특히 문학과의 괴리는 일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 호세이대학에서 열린 ‘한국문학과 영화’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마치고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과정에 그동안 일본 학계에서 한국문학 연구의 간판 역할을 해 온 도쿄외국어대 한국문학 전임이 없어졌다는 우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에구사 도시가스 교수가 퇴임한 후 그 자리가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학위과정을 마치고 최근 무사시대학의 전임이 된 한 젊은 교수는 그래도 한국이나 한국어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관심은 적지 않은 편이라고 진단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전공으로 한국어를 선택하는 학생들에게 그 동기를 물어보면 한류보다도 한일월드컵 때 받은 강한 인상을 이야기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한다. 문제는 한국을 알고 배우고 싶어 하는 그들의 욕망이 꼭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학 말고도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어를 안내해주는 통로는,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서 너무나도 많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알기 위해 반드시 문학을 읽어야 하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지금 너무도 멀리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국과 일본의 문학 전공자들이 주로 모인 그날 술집에서 이어진 대화 자리에서 시종 화제가 된 것은 아쉽게도 한국문학보다는 한국 영화와 배우였다.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한국 문인들의 오랜 꿈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문학이 한국어와 한국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다른 나라 다른 언어권의 독자들과 만나고 그들로부터 응분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세계화가 한창 진행되는 이 시대는 정작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듯하다. 세계적으로 문학이 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하기 힘들어진 그 시점에 한국문학은 막 세계무대에 발을 디디려 하고 있다. 그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대중문화가 내는 소음에 묻히지 않기 위해선 보다 주의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남진우 시인·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