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의 수장(首長), 경제부총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한덕수(韓悳洙)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한 지 4개월이나 지났지만 경제 수장에 걸맞은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청와대, 총리실, 여당으로 넘어가 경제부처들의 이견을 조정하는 경제부총리의 역할도 실종된 상태다.
경제부총리의 축소된 위상은 부동산 문제, 수도권 규제 완화, 서비스업 개방, 성장잠재력 배양 등 주요 이슈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는 14일 대한상공회의소 조찬간담회에서 “하반기부터는 내가 경제운용 동향을 맡아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투기를 일삼는 사람은 3만∼5만 명”이라며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 2주 전부터 내가 직접 대책을 주관하고 있으며 금융, 세제, 공급 부문을 중심으로 오래 갈 부동산대책을 8월 말까지 내놓겠다”고 했다.
열린우리당도 부동산 문제는 여당이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경제 문제는 경제부총리가 최종 책임자라는 인식이 당-정-청 내부에서 깨지고 있는 것.
부총리의 발언에 힘도 실리지 않는다.
한 부총리는 4월 29일 정례 브리핑에서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는 중장기 세제개편 과제로 연구해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닷새 뒤인 5월 4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내년부터 1가구 2주택 보유자 등을 대상으로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를 실시하고 2007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구체적인 일정이 확정됐다.
한 부총리는 7일 간담회에선 “(지난달 24일 당-정-청 모임에서)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청와대 참모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 노 대통령은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원가 공개는 우리당의 총선 공약 사항이며 공개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경제부총리의 위상이 왜소해진 것은 무엇보다 노 대통령이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경부의 고위관료는 “과거 재경부가 하던 역할을 요즘은 총리실이 하고 있다”며 “토론을 통한 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비전문가들의 간섭이 많아지면서 정책의 효율성과 집행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청와대 산하 각 위원회가 정책 집행에 간섭하면서 경제부총리의 위상이 더 추락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는 “대통령이 한 부총리를 경제정책의 수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시장도 부총리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경제부처의 관계자는 “수도권 규제 완화, 분양원가 공개, 서비스업 개방 등에서 한 부총리가 청와대와 당을 설득해 자신의 철학이 담긴 정책을 펼 줄 알았는데 너무 쉽게 뜻을 굽히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관계자는 “부처 간이나 당-정-청 간 이견을 외부에 노출하지 않으려는 한 부총리의 스타일 때문에 오해를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