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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 리포트]사막 꽃 피우는 첨단기술

입력 | 2005-07-15 03:10:00

토굴 앞 위성안테나간쑤성의 성도 란저우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진 해발 1500m 황토고원의 농업마을 궁징 현 신융 촌. 그랜드캐니언을 방불케 하는 서부의 오지 중 오지다. 청나라 때 형성된 이 토굴 마을을 외국인이 찾은 것은 2003년 미국인 교수에 이어 본보 취재팀이 두 번째. 이곳 주민들은 최근 위성안테나를 통해 TV를 보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등 ‘천지개벽’을 체험하고 있다. 궁징(란저우)=원대연 기자


당(唐)을 비롯한 13개 왕조의 수도로 화려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3000년 고도(古都) 시안(西安). 그 남쪽 외곽엔 20∼40층짜리 초현대식 마천루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 등 최첨단 기술개발단지인 가오신(高新·하이테크)기술개발구다. 5년 전만 해도 일부 농경지였던 곳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모래바람만 불던 불모지였다.

“여기는 6500여 개 소프트웨어 업체가 입주한 소프트웨어 파크, 저기는 비즈니스 인큐베이팅 센터…. 그리고 이 건물엔 필립스, 인피니온 등 외국 첨단 업체들이 들어와 있습니다.” 안내를 맡은 가오신개발구 리샤오밍(李曉明) 주임의 설명이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6배가량 되는 1455만 평의 1차 개발구에는 각종 첨단 기업 3000여 개와 400여 개의 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추가로 조성된 1515만 평의 2차 개발구 역시 입주가 거의 완료된 상태다. 근무자만도 총 24만여 명.

중국 서부는 더 이상 유령의 사막이 아니다.

중국이 2000년 서부대개발 대장정에 들어간 이후 서부 사막에서 IT 산업을 중심으로 한 첨단 산업이 꽃피고 있다. 서부 각 지역에 건설된 가오신개발구의 총규모는 업체 수와 종사자 수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간다. 3억7000만 명의 시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서부를 세계의 IT 산업 중심지로 조성해 서남아시아∼중앙아시아∼카프카스를 잇는 대중화(大中華)경제권의 핵심 첨단 기술기지로 만들겠다는 중국 정부의 야심 찬 계획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왜 서부인가=세계적 IT업체인 미 인텔은 쓰촨(四川) 성 청두(成都) 가오신개발구에 3억7500만 달러를 투자해 올해 10월부터 반도체 관련 제품 생산에 들어간다. 마이크로소프트(MS) 모토로라 소니 알카텔 에릭슨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들도 속속 자리를 틀고 있다. 현재까지 청두 가오신개발구에 입주한 외국 기업은 500여 개. 시안도 필립스를 비롯해 총 660여 개의 외국 기업이 16억 달러를 투자해 생산시설과 연구소 운영에 나서고 있다.

잠들었던 실크로드 출발지가 하이테크 중심지로
1000년 전 실크로드의 출발지 시안 외곽의 가오신기술개발구. 5년 전만 해도 일부 농경지를 제외하곤 모래바람이 휘날리던 허허벌판이 서부대개발 이후 최첨단 기술 업체들이 입주하고 있는 20∼40층짜리 마천루 숲으로 변했다. 시안=원대연 기자

한국도 5월 말 대한상공회의소 주도로 구본준(具本俊) LG필립스LCD 부회장을 비롯해 기업 및 관련 연구기관 인사 45명으로 구성된 시장개척단이 서부 곳곳을 둘러보며 시장조사를 벌인 데 이어 IT 관련 모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IT 산업 선두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일본 핀란드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토굴집 주민이 위성TV와 컴퓨터를 들여놓는가 하면, 초원을 전전하는 유목민조차 휴대전화를 이용할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는 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시안과 청두, 충칭(重慶)에는 컴퓨터 1000대를 갖춘 PC방이 호황을 누리는 등 서부는 빠르게 정보화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대중(對中)사업 컨설턴트인 김형환(金亨煥) CMP비즈시스템 대표는 “왜 외국 대형 IT업체들이 황무지에 연구소와 생산시설을 세우고 고급 인력을 파견하는지 한국 기업도 심각히 고려해 볼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서부대개발의 중심으로=기술개발구에 몰려드는 IT업체들은 벌써부터 서부지역의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2002년 이후 인텔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이 몰려들면서 청두의 국내총생산(GDP)은 연간 기준으로 500억 위안(약 6조2000억 원) 늘었다. 시안 가오신개발구에 입주한 기업들의 총영업이익은 800억 위안(약 9조9200억 원)으로 5년 전(201억 위안)의 4배 가까이 늘어났다. 시안 GDP의 4%에 해당하는 액수다.

청두에서 북동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인구 60만 명의 찬양(綿陽)은 창훙(長虹)그룹이 먹여 살리고 있다. 전자 및 IT 회사인 창훙은 직원만 3만7000여 명. 이 그룹은 지난해 MS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VCD 플레이어와 고화질(HD)TV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넘어서라=이처럼 중국 서부에 첨단 산업이 몰리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연간 강수량이 500mm 이하로 습기가 적은 지리 환경적 조건을 갖춘 곳이 많다. 연중 비가 오는 기간이 3개월에 불과한 실리콘밸리처럼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서부에 연간 수만 명씩 쏟아지는 IT 관련 고급 인력이 집중돼 있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중국 정부는 IT 산업 개발을 통해 서부를 현재의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정보화사회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신식산업전자 제11설계연구원의 야오웨이(姚偉) 부원장은 “서부의 IT 산업 추세로 미뤄볼 때 10∼20년 안에 실리콘밸리나 인도의 실리콘스테이트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도 훌륭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가오신(高新) 기술개발구:

중국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1988년 5월부터 집중 육성하고 있는 최첨단 기술개발단지. 중국 정부가 전역에 건설한 53개 국가급 가오신기술개발구가 있으며 서부의 경우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최첨단 기술 기업을 유치해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중국 정부는 사막과 황무지를 개발해 건설한 서부의 가오신기술개발구를 세계 정보기술 및 생명공학기술 산업의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넘치는 인재 풀…이공계 졸업생 省마다 매년 수만명▼

“여기엔 젊은 사장과 부사장이 수두룩합니다. 정보기술(IT) 분야를 전공해서 창업하려는 사람이 많거든요.”

청두 가오신개발지구 내 소프트웨어파크에 입주한 벤처회사 ‘델코 치(Delco Chi)’의 양촨(楊川) 부총경리(부사장)는 30세다. 과거 IBM에서 근무한 경력을 바탕으로 2003년 회사 창업 때부터 참여했다.

IT 업체들이 중국 서부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젊은 인재들이다. 청두의 경우 22개 종합대, 80개 기술전문대에 33만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통폐합을 거치면서 규모를 키운 이들 대학은 1개 대학에서 매년 평균 3000명 안팎의 석박사 학위자를 쏟아낸다. 시안에서는 작년 과학기술 분야에서만 5만2000명의 대졸자를 배출했다.

이런 고급 인력을 잡으려는 외국 기업의 러브콜이 이어지면서 산학협동도 활발하다.

청두 전자과기대는 HP, 인텔, 모토로라 등 10여 개 업체들과 30여 개의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IBM은 이 대학에 1200만 달러짜리 컴퓨터 서버와 300대의 개인용 컴퓨터(PC)를 기증하고 ‘IBM기술연구센터’를 세웠다. 인텔은 대학원생들을 뽑아 인턴십 프로그램을 진행한 뒤 매년 40∼50명을 채용한다.

이 대학 대학원의 류나이치(劉乃琦) 부원장은 “상당수 학생이 3년의 대학원 과정 중 1년은 외부 업체에서 실습을 한다”고 소개했다.

반병희 차장(팀장·국제부)

하종대 기자(사회부) 이호갑 기자(국제부)

이은우 기자(경제부) 이정은 기자(정치부)

원대연 기자(사진부) 김아연 정보검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