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도쿄의 밤하늘에는 불꽃놀이 행사가 이어진다. 여름철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도쿄 만 앞바다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를 관람하는 일본 여성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도쿄의 여름은 습도가 높은 탓에 후덥지근하기로 악명이 높다. 서울과 비슷한 온도라도 실제 느끼는 체감 더위는 도쿄 쪽이 훨씬 심하다. 혹자는 일본 사람들이 여름철 해외여행을 많이 떠나는 이유로 ‘부자 나라’라는 점 외에 도쿄의 더위에 질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7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하나비(花火·불꽃놀이) 시리즈’는 도쿄의 무더위를 견디게 해주는 청량음료와 같다. 도쿄를 포함한 수도권 일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 행사만 100여 개에 이른다. 강에서, 바다에서, 공원에서, 심지어 축구 경기장에서도 수천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불꽃놀이가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것은 바쿠후(幕府) 무사정권이 일본을 통치하던 1733년. 당시 일본 전역에서 질병이 유행하고 흉작으로 서민 생활이 도탄에 빠지자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川吉宗)가 도쿄 시내를 관통하는 스미다가와(隅田川) 강가에서 수신제(水神祭)를 올리고 이에 맞춰 불꽃을 쏘아올린 것이 기원이다.
불꽃놀이가 여름철을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전통 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일본식 슬리퍼인 ‘게타’를 신은 채 불꽃놀이라면 빼놓지 않고 섭렵하는 ‘하나비 마니아’도 등장했다.
회사원 야마모토 요코(山本陽子·30·여) 씨도 그런 인물 중 한 명. 틈만 나면 불꽃놀이 이벤트를 소개하는 잡지를 뒤적이며 2005년 여름의 추억을 장식할 ‘하나비 코스’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그는 “여름 휴가는 하나비가 뜸해진 다음에나 떠날 생각”이라며 “며칠 전엔 큰맘 먹고 여름 보너스로 최신 디자인의 분홍색 유카타를 새로 장만했다”고 소개했다. 애인이 없어 다른 축제에 가면 외로움을 느끼지만, 불꽃놀이가 열리는 날은 화려한 공중쇼에 빠져 맥주로 목을 축이다 보면 싱글의 설움을 느낄 겨를이 없어 좋다고 말한다.
불꽃놀이는 가난한 연인들에게도 고마운 데이트 코스다. 일부 행사는 인기가수 공연과 곁들인다는 명목으로 1인당 4000엔(약 4만 원)을 받기도 하지만 미리 발품만 팔면 돈을 내지 않고도 목좋은 자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늦게 오는 여자 친구를 위해 몇 시간 전부터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를 갖춰 놓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젊은 남성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띈다.
올해 불꽃놀이의 스타트를 끊는 행사는 도쿄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인 항구도시 요코하마(橫濱)의 개항기념 축제. 올해로 50회째인 이 축제에서는 갖가지 꽃을 형상화한 불꽃 무늬가 관람객을 매료시키고 천둥소리, 폭죽소리, 음악소리 등 다양한 음향이 듣는 이의 귀를 시원하게 한다.
도쿄에서는 7월 30일 스미다가와 강변에서 펼쳐지는 불꽃놀이가 ‘일본 최고(最古)의 하나비’라는 명성과 맞물려 벌써부터 마니아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하나비 제작에서 명성을 쌓은 전문기업 10개사가 ‘하나비 콩쿠르’에 출전해 자존심을 걸고 다채로운 문양과 장중한 스케일로 불꽃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특히 2000발의 불꽃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사되는 마지막 5분의 라스트 쇼가 압권.
도쿄의 불꽃놀이는 8월 13일 도쿄만 앞바다에서 열리는 ‘도쿄만 하나비 대회’로 절정에 이른다. 수도권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 행사에서는 도쿄타워보다 높은 380m 상공에서 불꽃이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장면이 하이라이트.
바다를 낀 신시가지 오다이바(お台場) 일대에 자리잡은 고층 빌딩과 호텔의 레스토랑은 1인당 2만 엔(약 20만 원)이 넘는 코스 요리를 중심으로 이미 예약이 끝났다. 지갑 사정이 넉넉한 커플들은 인파로 북적거리는 육지를 피해 도쿄만 앞바다에 떠있는 유람선 선상에서 느긋하게 감상하는 방법을 택한다.
규모면에서 밀리는 일부 불꽃놀이의 주최 측은 관람객이 불꽃을 직접 쏘아 올리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맞서고 있다. 참가비는 5만 엔으로 결코 싸지 않지만 불꽃을 발사하기 전에 메시지를 낭독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참가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생일 축하해” “우리 다시 사귀면 안 될까” “결혼해 줘” 등 다양한 고백이 나온다.
이 밖에 △불꽃놀이는 밤이 제격이라는 통념을 깨겠다며 오후 4시부터 불꽃을 쏘아올리는 ‘대낮 하나비’ △초등학교 학생들의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꿈의 하나비’ △프로축구 경기의 하프타임을 이용한 ‘축구 하나비’ 등도 눈길을 끈다.
하나비가 열리는 날이면 행사장으로 통하는 지하철과 전차 노선은 유카타를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로 채워진다. 이들이 평상복보다 땀을 훨씬 많이 흘려야 하는 유카타를 입는 것은 애인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철도회사나 음식점 등이 유카타를 입은 여성에 한해 최고 50%까지 할인해 주는 이벤트를 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의도에서처럼 사람에 치여 고생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도 도쿄 불꽃놀이의 좋은 점이다. 불꽃놀이 행사가 자주 열려 관람객이 분산되는 데다 안내요원과 구경꾼 모두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불꽃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요령을 터득한 덕택에 인파에 부대끼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