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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외국인新婦들]이방인 새댁 힘겨운 ‘뿌리내리기’

입력 | 2005-07-16 03:05:00


필리핀 출신으로 한국 남자와 결혼한 A(26·전북 장수군) 씨는 첫딸을 가졌을 때 심한 입덧과 난산으로 고생했다.

A 씨는 “더 이상 아이를 갖고 싶지 않지만 남편과 시어머니가 ‘아들을 꼭 낳아야 한다’고 종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남편에게 자신의 심정을 설명하기 어렵고 농촌지역이라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주변에 없어 더 답답하다.

전북 임실군의 B 씨는 한국에 국제결혼을 와 아들을 낳고 지낸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외국인’이다. 부인이 국적을 취득하면 외국으로 도망갈지 모른다고 남편이 쉬쉬해 왔기 때문.


B 씨는 올해 초 보건복지부 실태 조사 과정에서 국제결혼한 뒤 2년 이상 거주하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고통 받는 농촌의 외국인 신부=필리핀에서 온 C(23) 씨의 40대 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신다. 게다가 주먹을 자주 휘두른다.

농부인 남편은 “필리핀 여자는 거짓말을 잘한다. 위장 결혼한 것 아니냐”며 C 씨를 괴롭힌다.

C 씨는 “‘한국에서 농부는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고 결혼하면 친정에 매달 300달러씩 보내 주겠다’는 중개인의 말을 믿고 결혼했다”며 후회했다.

보건복지부의 첫 실태조사를 보면 농촌지역 외국인 신부 4명 중 1명은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의 17%는 상담할 곳이 전혀 없다고 응답했다. 외국인 여성의 14.4%가 원하지 않은 일을 강요당할 때도 신고 없이 참고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여성발전센터가 2002년 광주와 전남지역의 국제결혼 외국인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응답자 중 30%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지만 이들 중 64%는 ‘그냥 참는다’라고 답했다.

▽한국인 만들기 프로그램이 없다=농촌지역의 지방자치단체는 1990년대 초반부터 농촌 총각 중매사업만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정착서비스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일부 지자체가 한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예산 및 인력부족으로 지자체 대부분은 손을 놓고 있다. 상담 프로그램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충북도청의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결혼 이민자를 위한 지원을 하고 싶어도 예산이 부족하다”며 “시군별로 지방세비를 쪼개 사업을 시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민혜(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 4년) 조기현(서울대 노어노문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2년 지나야 국적취득… 그전엔 생보자혜택도 없어▼

전문가들은 “농촌지역의 국제결혼은 몇몇 사회적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농촌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인 현상”이라며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경남 창원시의 ‘여성의 전화’ 양정화 대표는 “이제 이주여성을 단지 외국인 여성이라는 배타적인 시각이 아니라 한국도 다문화 다인종 사회에 들어서고 있다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국제결혼을 한 여성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가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강좌를 자주 개설한다.

대만도 국제결혼을 한 여성이 4개월 이상 합법적으로 체류하면 누구나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저소득층 가정에는 생활비를 지원한다.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정기선 정책개발실장은 “가족의 일원이면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외국인 여성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면서 “생계유지가 곤란한 여성 이민자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여성 관련 단체의 전문가들은 외국인 신부의 국적 취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적법’은 국제결혼으로 인한 간이 귀화 요건으로 국내에서 2년 동안 거주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영주(F-5) 비자를 신청하려면 국내에서 5년간 거주해야 한다. 영주권 취득이 국적 취득보다 쉬워야 하는데도 한국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영주권 비자 취득 요건에 결혼이민자 특례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코시안(코리안+아시안) 아동을 돕는 ‘펄벅재단’의 자원봉사자 강수정(20·대학생) 씨는 “동남아 출신 엄마를 둔 코시안 아이들이 특히 한국인에게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면서 “2세를 위한 교육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북대 설동훈(薛東勳·사회학) 교수는 “국적 취득 절차나 체류 연장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담은 팸플릿을 외국어로 제작해 배포하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