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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어 판결문’을 심판대에 세워라

입력 | 2005-07-18 03:14:00


“피해자가 안면부 상악, 관골부위, 우주관절, 우전완부 등의 다발성 좌상 및 우상순부의 1cm 정도 열창을 입은 사실이 인정된다.”

14일 서울고법의 한 형사사건 법정. 재판장이 피고인 이모(32) 씨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설명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뺨을 여러 차례 때려 오른쪽 윗입술이 터지고 광대뼈가 부어올랐고 오른쪽 팔이 심하게 비틀려 멍까지 들었다’는 뜻. 그러나 법정에서 이 판결 내용을 알아듣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에 따른 손해보험금을 다투는 민사 분쟁에서는 피해자가 다친 상태 자체가 금액을 정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지만 판결 용어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설모(57) 씨의 최근 손해배상 사건 판결문에는 “좌측 슬관절 후방 불안정성과 내측 반월상 연골 파열로 영구적으로 24.97% 노동능력 상실”이라고 씌어 있다. 판결 내용만 보면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다쳤기에 ‘노동능력 24.97%’를 잃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치고 뼈 사이의 연골도 손상돼 걷기 힘들 정도’라는 뜻.

또 다른 판결문에는 피해 상황이 ‘우상완 골절’(오른쪽 팔이 부러짐) ‘비출혈 및 구순부 열창’(코피가 나고 입술이 찢어짐)이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어려운 판결 용어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재판 당사자들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판결문을 받아 본 재판 당사자들이 ‘판결문 때문에 더 답답하다’며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만 변호사도 전문용어를 모두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똑같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의학용어는 우리도 잘 모르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함부로 풀어쓰면 잘못 이해될 수 있다”며 “의학계에서 먼저 체계적인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중견 변호사는 “판사들 스스로 쉽게 풀어쓰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의학 전문용어 탓만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