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없어도 될 정도의 정직한 사회가 아버지가 꿈꾸던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제57주년 제헌절을 맞은 17일. 대구에 사는 서태주(84·여) 씨는 노환으로 불편한데도 아버지인 동암 서상일(東菴 徐相日·1887∼1962) 선생에 대해 또렷하게 얘기했다.
동암 선생은 제헌국회의 헌법기초위원장. 그의 넷째 딸인 서 씨는 혈육 중 유일한 생존자로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구지부 이사를 지냈다.
대구에서 태어난 동암 선생은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1909년에 김동삼(金東三) 윤병호(尹炳浩) 선생과 함께 항일무장투쟁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해 만주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대구지국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설에 동참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돼 헌법기초위원장을 지내며 헌법 제정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서 씨는 동암 선생에 대해 “양심과 정직을 목숨처럼 생각한 분”이라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늘 양심이 땅에 떨어진 혼란한 사회를 걱정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대한민국을 굳건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법을 세워야 한다’며 유진오(兪鎭午) 박사와 함께 헌법 제정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고 말했다.
동암 선생은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 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내각제 개헌을 주도하고 사회대중당을 창당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